공자의 시대는 얼마나 도라이같은 시대였는가.jpg
전국사군자(戰國四君子) 중 하나인 평원군은 조나라의 여러 공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공자들 중에서 조승이 가장 어질고 빈객을 좋아하며 그 밑으로 모여든 빈객이 대략 수천 명에 달했다.
평원군의 집 누각에서는 민가가 내려다보였다. 민가에는 절름발이가 살고 있었는데 절뚝거리며 물을 길으러 다녔다. 평원군의 애첩이 누각 위에 앉아 있다가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 다음 날 절름발이가 평원군의 집 문 앞에 와서 말했다.
"저는 당신이 선비를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선비들이 1000리를 멀다 않고 찾아오는 것은 당신이 선비를 소중히 여기고 애첩을 하찮게 여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행히 다리를 절뚝거리고 등이 굽는 병이 있는데 당신 애첩이 저를 내려다보고 비웃었습니다. 원컨대 저를 비웃은 년의 목을 베어 주십시오."
평원군이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소."
절름발이가 돌아가자 평원군은 웃으면서 말했다.
"저 작자 좀 보게. 선비라는 놈이 한낱 아녀자가 웃었다는 이유로 죽이라고 들다니 정신나간 자가 아닌가?"
평원군은 끝내 애첩을 죽이지 않았다. 그 뒤 1년 남짓한 사이에 빈객과 문하, 사인들이 조금씩 떠나가더니 떠난 자가 절반이 넘었다. 평원군은 이를 이상히 여겨 말했다.
"나는 여러분을 예우하는 데 크게 실수한 적이 없거늘 떠나가는 자가 어째서 많은 것이오?"
문하의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당신이 절름발이를 비웃은 자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비들은 당신이 여색을 좋아하고 선비를 하찮게 여기는 인물로 생각하여 떠나는 것입니다."
이에 평원군은 곧 절름발이를 비웃은 애첩의 목을 베고 직접 문 앞까지 가서 절름발이에게 그 목을 내 주면서 사과했다.
그 결단력을 본 선비들은 박수갈채하며 다시 그의 문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공자뽕이 어느정도 주입된 시대인데 저 정도다






난또 사과 안했다고 그런줄알았더니 비웃은 저년 목 안따서 일줄은;
저런 놈들이 그대로 한나라 진나라 이어가며 평민들은 다른 취급함 아닌가
진나라가 특히나 호족들이 하인 목 날리는 거 숨쉬듯 했다고 본 거 같은데
근데 근대까지만 해도 사람 값이란게
생각보다 쌌던거 생각하면....
당장 애는 작은 어른이 아니란 개념도
오래된게 아니고
사군자 중 으뜸이었다는 맹상군도 고리대금업을 했고
중국인들이 말하는 의와 협이 이런 건가
물론 저 애첩이 먼저 잘못한건 맞지만, 고직 비웃었다는 이유로 죽여버려야 했던 시대 ㅋㅋㅋㅋㅋㅋ
서양 애들이나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기독교가 있었기에 선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전파되었다고 믿던데
동양에서도 불교랑 유교가 있었다고..
저때는 유교 아니더라도
귀족의 명예>>>>>>> 인명 이던시대라
저 때는 생명경시 조낸 심할 때...
앞에서는 알겠다고 하고 뒤에서는 비웃었잖음...
차라리 네가 선비인지 모르겠다 했으면 모르겠는데
알겠다 = 너 선비인거 인정함
이런거면...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이전투구 말고는 설명할 말이 없음
권력과 재물을 위해서라면 아들이 엄마를 죽이고, 동생이 형을 죽이고 하는게 일반 평민은 물론 귀족 왕족들 한테
아무일도 아니었음. 오죽하면 하룻동안 왕이 4번 바뀐 나라도 있다잖어.
관우: (춘추좌씨전을 읽으며) 으으, 답이 없네.
그 진나라 때였나? 부자들이 재력 과시한다고 사람 죽여대던 거 생각나네
시기 생각하면 공자 죽은 뒤 한참 이후일텐데
저거 그냥 약속을 안지켰다는게 더 큰 문제였던걸로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