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슨 녀석은 나의 '존중'에 감동을 느낀듯 함.
하지만, 사람의 기질은 바뀔수 없음. 10년이 지나도 K테크가 여전한것 처럼.
나라는 사람의 '기질' 역시 때려 죽여도 바뀌진 않음.
대신 타협을 하는거임. 나의 기질을 바꾸지 않되,
그 기질을 긍정적으로 표출하느냐, 부정적으로 표출 하느냐?
그렇기에 사람은 겪은 일을 기억하고 성찰을 해야함. 실수를 통해 '결과'라는 데이터를 얻으니까.
나의 의심은 똑같이 남아있음.
'PLC가 분명 뭔가 실수가 있을 것이다.'
'중국 엔지니어와 한국 엔지니어는 그 수준이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냈을 때, 단 한명도 그 발언을 용납하지 않았음.
설령 그들의 실수가 존재했었던 문제였을 지라도.
결국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다시 만나면 껄끄러운 관계밖에 될 수없던 결과.
그리고 항상 내가 '간과' 한 부분에서 역풍이 불어왔던 경험이 있음.
'나는 해당 프로그램의 소스코드를 눈으로 확인한 적이 없는 점'
즉,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토대로 지금의 상황을 본다면
의심은 있으나 나 역시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 '판' 인거임.
그럴때는 그저 내 할일만 하며 기다리는거임. 결국 그만큼 '지연'이 되거나 문제가 '이슈'가 되면 나보다 더 높고, 힘센 자들이 나타나 나 대신 상대를 추궁하게 되어있음.
그 추궁의 화살은 나에게도 올 것이고,
나는 그 화살을 막아낼 수 있는 '기술적 방어'만 준비하면 됨.
결과는 2가지 임.
1. 나도 화살을 막아내고, 상대도 막아내면. 그외의 누군가가 화살을 맞아 죽음. 그때는 둘이서 함께 '팝콘'을 먹으며 역시 나는 너를 믿었어~ 허세를 떨어주면 됨.
2. 나의 화살을 다 막아내고, 상대가 화살에 맞아 죽는걸 보며 '팝콘'만 먹으면 되는 결과.
그것이 경험이고, 내 기질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뭘해도 지지않는 싸움.
***
오후 6시가 조금 넘어갈 때 쯤, 철수하자는 얘기가 나왔음. 물론 제조팀은 여전히 남아서 대응 중이었고, 금일 출장자들만 퇴실이었음.
라인을 나오며 제발..제발..여권...핸드폰...기도하며 나왔고, 막상 장소에 도착하니 소지품들이 그자리에 가지런히 놓여있었음.
[마음으로 중국에 사과했음.]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며, 공장 밖으로 나가보니 우리를 공항에서 픽업해 주었던 기사님이 대기하고 있었음. 그렇게 차를 타고 15분 정도 가보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음.
아파트 단지 번화가 중심의 모텔이었는데.
캐리어를 끌고 체크인 후 방에 들어가 일단 침대에 대(大)자로 벌렁 누웠음.
오늘 새벽부터 끌어모아왔던 이동간의 스트레스, 분실 위험에 대한 스트레스, 기다림의 스트레스, 업무간의 스트레스, 낯선 환경의 스트레스, 찝찝함의 스트레스, 흡연 욕구의 스트레스...
그 모든것들이 내려가는 안도감.
마치 차가운 냉탕에 10분 처박혀 있다가 따뜻한 사우나에 들어가 앉았을 때, 몸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그 1분 같았음.
어쩌면 장비업계 일을 하며 하루의 책무를 다한 이 순간의 안도감이
장비업계가 내게 주는 최고의 보상일 거임.
장비업계 해외출장자는 다들 마조다.
고생이 좋아서가 아니라, 고생 끝에 찾아오는 ‘살았다’가 너무 달아서 또 간다.
***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옷을 다시 입은뒤(빨래 많이 만들기 싫은 습관. 빨래는 하루에 하나만 만든다..!)
괜히 호텔 입구로 나가 낯선 중국의 거리를 바라보며 담배를 폈음.
이럴때면 그저 걸어가는 사람만 봐도 재미있고,
나 여기 있다 해-! 알아서 피해가라 해-!
빵빵 크락션 울리는 차량들도 귀여움.
하나같이 머리 빡빡민 애기들도 재밌고,
가로수 밑에서 할머니가 손녀를 들고 쉬야 시키는 모습도 웃김.
길에서 사탕수수 깎고있는 깡마른 할아버지와 한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열대 과일들이 마치 제주도에서 감귤 취급 받고있는 이질적인 모습도 신기함.
그러고 있으니 백이사와 양이사, 성차장이 옆에 나와 담배 불을 붙였음.
백이사 왈
"소장님. 오늘 어째? 정리가 좀 됐습니까?"
[님이 뭘 도와줬다고 그걸 물어봅니까? ㅋㅋ]
"아, 네. ㅋㅋㅋ 생각보다 많이요 ㅎㅎ"
"오랫만에 보니까 감회가 새롭지요?"
"제가 알던 장비가 아니더라구요. 바뀐것도 많고. 그간 고생들이 많았을거 같습니다 ㅎ"
"오. 그래요? 허허. 아 소장님. 여전히 술은 안합니까?"
"네 ㅋㅋ 제가 그때도 그렇고 사람들이랑 어울리기 싫어서 안마신게 아닙니다;; 술 못먹는건 집안 내력이에요 ㅋㅋㅋ"
그러자 이제 막 나오던 꾀돌이 이사가 맞장구를 쳐줬음.
"이사님 진짭니다 ㅋㅋ 우리 소장님은 대표님이 먹자해도 한 잔도 안먹습니다 ㅋㅋ"
성차장이 말했음
"그러시면 소장님 오늘 맛있는거 많이 사드릴께요^^ 죄송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도와드렸어야 했는데.."
"네. 뭐 저야 감사히^^;;"
***
숙소 바로 맞은편에 큰 식당이 있었는데, 1층은 야채나 식재료를 고르는 시장 같았고. 2층에는 중국 특유의 빙글빙글 테이블을 돌리는 형식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음.
식재료로 자라도 보이고...뭐꼬 저건..? 해마!? 해마로 뭘 해먹지???? 저런건 아쿠아리움에서 보는거 아닌가? ㅋㅋㅋㅋ
다리만 있으면 책상도 씹어먹는다는 중국이 아니고, 다리가 없어도 꼬리만 있으면 다 잡아먹는다로 바꿔야 겠음.
K테크가 좋은점(?)이 있다면 밥 하나는 거나하게 먹는 사람들이라는 것.
맛집은 어떻게 귀신같이 찾아서 최고 수준으로 식사를 함.
그리고 밥먹는데는 회사가 돈을 아끼지 않음.
27살 그때의 나는 그들의 테이블에 앉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음.
가치 없는 사람들이니까.
내가 인정하는 중국 숑디들이랑 뒷골목에 앉아 가지구이나 뜯어 먹으며 즐겼음.
지금에서야 그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편하게 식사를 하게 되었음.
사람의 기질은 바꿀 수 없는거지만..결국 혼자 세상을 살아갈 순 없음.
장비라는게 그런거임.
프로그램 아무리 멋들어지게 만들어 봤자, 설비가 없으면 팔아먹질 못함.
팔지 못하면 결국 내 프로그램도, 기술도 가치가 없음.
그들이 마음에 안들지만, 내 가치를 현실에서 증명할 기회를 결국 그들이 만들어주는거임.
................
메뉴를 주문 할 때쯤, 우리보다 늦게 퇴근했던 박과장과 타이슨도 식당으로 들어왔음.
나머지 인원들은...이 테이블에 초대 받지 못함.
[여전하군 계급사회...여전히 마음에 안든다 진짜...ㅋ]
백이사의 대표적인 용병술 중 하나임. 그날의 업무 결과에 따라 저녁 테이블에 멤버가 바뀜.
박과장이 이곳에 불려 왔다는건, 오늘 너 고생했다. 인정해준다. 이런 거임.
백이사와 매일 저녁 함께 식사를 한다는건 대단한 영광이 되는거지...
그리고 그 영광은 항상 꾀돌이 이사가 차지해 왔었고..ㅋㅋ
음식이 나오자 이사들은 바이주를 시켜놓고 이게 몇도 짜리 술이니, 숟가락에 올려놓고 불 붙이며 놀았음.
술에 관심없는 나와 타이슨은 둘이서 스몰 토크를 했음.
백이사는 맛있는게 나오면 테이블을 돌려 내 앞에 고정 시켜 주었음.
"이거 맛있는겁니다."
"이거는 우O에만 있는 요린데. 꼭 잡숴봐."
"네^^ 감사합니다 이사님."
아마 검사기 관련해서 자기들이 아무것도 안챙긴걸 아는거고, 슬쩍 건드려 봤는데도 내가 아무런 티를 안내자 약간의 미안함과 대견함(?)을 느낀듯...
[아씨ㅡㅡ 닭살 돋게 그냥 자기 술이나 마시지..ㅋㅋㅋㅋ]
타이슨이 말했음.
"버섯. 너 예전에 K테크 다녔다며?"
"어 맞아. ㅎㅎ 13년도 였지."
"오. 너 13년도에 중국출장 어디갔었어?"
"나? 동O. ㅎㅎ"
"나도! 나도 동O에 있었는데!"
"그래? 너 어디서 일했는데?"
"싼싱에서 일했지!"
"그래? 그때도 PLC 했냐?"
"아니. 그때는 그냥 오퍼레이터였어."
"흰옷? 아님 파랑? 노랑이는 품질이였던가.."
"흰옷 ㅋ"
"아. 생산이야. 그럼 너 소연이 알겠네? 걔 반장인데."
"소연이? 몰라."
"너 총칭의 소악마들 모르냐? 그 악질 쌍둥이 자매."
"아...아!!!!!!!ㅋㅋㅋ 야!! 니말 들으니까 생각난다!!! ㅋㅋㅋㅋ"
"보고싶냐? 나 걔 시집갈때 사진 있는데."
"아니-! 굳이 보고싶진 않다 ㅋㅋㅋㅋ"
"키야...그때 그 꼬맹이..내 호텔방에 혼자 들어와서 난감하게 만들었지 ㅡㅡ;"
"엥!!?! ㅋㅋ 진짜? ㅋㅋ 야 뭔데 얘기좀 해봐 ㅋㅋㅋㅋ"
"충성 맹세 할꺼냐?"
"........."
"너 임마. 그때 나 만났으면 소연이 따까리...."
.............
.........
......
저녁 8시 반쯤, 한창 술을 마시던 사람들에게 말했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성차장님. 말씀드렸던 USB는 어떻게..?"
"아! 명현아. USB 갖고 왔지?"
"어. 여기."
타이슨에게 USB를 건네 받고
"한창 잘 드시고 계신데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저는 코드라도 한 줄 더 보는게 K테크에 도움드릴 수 있는거 같네요^^"
"아입니다~소장님 들어가세요~~"
***
방에 들어와 한숨쉬었음. 황금같은 시간을 다 날려먹었네..
이제 캐리어 안에 있던 내 소중이(노트북)을 꺼내서 USB에 실행파일 부터 받자..
캐리어에 비밀번호를 돌려보니...
틱..
엥? 비번이 틀렸나?
틱...
에엥??
핸드폰을 확인했음. 예전에 한번 비밀번호를 까먹은 적이 있어서 와이프가 메모장에 적어준 비밀번호를 확인했음.
'697'
그래...분명 697이 맞는데...
다시 시도해 봐도
틱...
이상하다 싶어 리셋 버튼을 확인하니 리셋 버튼이 뭔가 송곳에 파인것 처럼 파여서 푹 들어가 있었음.
뭐지??!!!
방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찾아보니 클립이 하나 보이길래 펼친 뒤 리셋 버튼을 건드렸더니
힘을 잃은 똘똘X 처럼 버튼이 흐느적 거렸음.
내 캐리어의 모델명을 인터넷에 검색하고 증상을 확인하니 비밀번호 분실 시 숫자를 000에 맞추고 리셋 버튼을 누르면 버튼이 푹 들어간다고 되어있었음. 그 상태에서 원하는 번호를 누르고 열림 버튼을 누를 시, 리셋 버튼이 튀어나오며 설정이 된다고...
그런데 뭘 얼마나 쑤셔 팠길래 리셋버튼이 맛이 갔나...
택시에 캐리어를 둘 때...나는 한번 노트북을 꺼내어 둘러 맸다가 성차장의 제안으로 다시 캐리어에 집어넣었음.
[기사가 그걸 봤을까..?]
정말 훔치려 했다면 이런 캐리어 따위 뻰지로 뜯어 버리면 열어 버릴 수 있겠지. 대신에 퇴근하는 내 눈에 '파손상태'가 바로 드러났겠지..
티안나게 슬쩍? 하려고? 아닌데!? 어차피 없어진걸 안 것과 동시에 범인이 특정 가능한데?
그래...그들의 수준으로 생각하자. 절도를 한다는건 이미 머리가 나쁘다는 증거다..
그저 멍청한 인간이 우유부단하고 간덩이가 작아서 과감하지 못했을 뿐.
티 안나게 훔치는게 성공했다면 그저 증거 있냐며 오리발 내밀어도 이곳은 중국이니까..
우린 한국인이고. 오히려 공안한테 우리가 역으로 사기를 친다고 우겨도 물증이 없다..
다만, 확실하게 파손이 되어있었다면 공안도 무조건 편들어주진 못하겠지.
딱 그정도의 지능..
왠지모르게 찝찝하던 그 '감'이 이런거였나...
[마음으로 중국에게 사과? 취소했음.]
캐리어의 무게로 봐서는 분명 안에 노트북은 들어있는데..고장난 채로 잠겨버린 캐리어를 열 방법이 없었음. 아오 씨X!!!!!!!!!!
모텔 카운터로 갔더니 직원이 없었음. 그저 여자아이 두명이 놀고있었음.
"얘들아."
"?"
"여기 어른들 없냐?"
"몰라."
"여기 가위나 뾰족 한거나...카....ㄹ"
"......?"
"아니다...;; (외국인이 이러면 애들 겁먹겠다..)"
에효...혹시 근처에 롱노우즈 뻰지라도 파는지 찾아봐야겠다..
그렇게 아파트 단지 곳곳을 걸어다니기 시작했음. 중국이 아무리 발전해도 여전히 변하지않는 것이 있었으니...이놈의 대륙은 저녁 8시가 되면 하루가 끝남..
그나마 열려 있다고 해도 문 닫기 직전...그나마 골든 타임이 있을때 움직여야 겠다 싶어 사방을 뛰어다녔음. 하지만 문이 열린 가게가 없었음.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온갖 짜증이 치밀어 오른채로 다시 모텔에 갔더니 카운터에 지배인 아저씨가 있었음.
"아저씨 혹시...아...(롱노우즈가 중국말로뭐냐...)"
"응? 왜? 말해"
"집게 알지? 앞이 뾰족한! 가위처럼 잡으면서..내가 이름을 몰라!! 암튼 그런거 있어?"
"아!! $!#$#!$말이지?"
"내가 이름을 모르는데 어떻게 알아 ㅋㅋㅋ 좀 빌려주라 ㅠㅠ 캐리어가 고장나서 뜯어야 돼.."
"먼저 올라가 있어봐. 내가 청소도구함 좀 옮겨놓고 가져다 줄께."
그렇게 방에가서 전전긍긍하는데 지배인이 노크를 했음.
환하게 웃으며 내게 롱노우즈를 건네며...아...천사다..ㅋㅋ
얼른 받아들고 잠긴 캐리어의 고리를 잡아 비틀었더니 투툭..! 하고 한쪽 지퍼 고리가 뜯어져 나왔음. 두개 다 뜯어버리면 재활용을 할 수 없으니까..
다행히 가방을 열어보니 무진가방과 노트북이 그대로 들어있었음. 지배인에게 포권을 하고 노트북 부팅을 기다리며 시계를 봤더니 11시였음..하아....
진짜 이번 출장 쉽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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