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덕후) 최재천 교수 영상 반박 Part 2
Part 1에 이어서,
최재천 교수는 영상 중반 부에 들어서자, 초반에 조심스럽게 주장하던 생태학적 관점을 갑자기 본인의 윤리적 관점으로 드리프트를 하더니, 신문기사까지 근거랍시고 들고와서는 TNR과 급식소에 대한 방법론적 우위를 주장한다.
여기에 더 나아가 '아는게 없기에 결론을 내릴수 없다'던 최재천 교수는 새덕후를 포함한 길고양이의 살처분 옵션 고려, 현장 제거등을 말하는것이 (자신의 도덕적 기준에 근거해) '불합리 하고 어색한 일'이라고 결론짓는다.
역시나 바쁘신 분을 위해 대략적인 결론부터
1. 생태학적 신중함을 내세우던 최재천 교수는, 영상의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갑자기 개인의 도덕적 판단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넘어간다.
2. 이를 위해 자신이 지지하는 정책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그러운 증거 수준을 포용하는데, (그것도 실제 연구 결과와 맞지 않는) 사업 홍보 신문기사, 본인의 개인적 관찰, 본인의 수우우우퍼 직관적 시선으로 주장을 옹호한다.
3. 이는 영상 초반부에 길고양이 피해 이슈 쪽에 요구하던 "한국이라는 환경에서 통제되고 체계적으로 추적 연구된 학술적 자료에 근거한 학술적 판단"을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내로남불이다.
4. 또한 ‘우리가 아는 게 아직 너무 없습니다. 아는 게 없으면 결론을 함부로 내리지 못하는 게 옳은 겁니다.’ 라며 자연계의 복잡함을 말하는 생태학자가 길고양이 살처분에 대한 개인의 도덕적 판단은 은근슬쩍 생태학적 사실인것 마냥 호도하여 ‘살처분은 새에 대한 엇나간 사랑, 불합리하고 어색한 일, 비윤리적인 일’로 결론 짓는다.
5. 하지만 국제적 생태학계에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TNR과 급식이 가진 한계를 명시하고, 살처분을 보존생태학의 한 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6. 위의 전 과정에 걸쳐, 최재천 교수는 이러한 국제 생태학계의 입장문이나 국제/국내에 존재하는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는 연구 자료들을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이하 내용
1. 전환 ? 갑자기 과학 문제가 ‘인간의 책임’이라는 윤리 문제로 바뀐다. 그것도 논리적 비약이 심각한....
초반에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생태적 접근을 보여주던 최재천 교수의 영상은 중반부터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앞부분이 '고양이가 생태계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가' 였다면, 갑자기 중간부터 인간이 만들어낸 길고양이에게 '우리는 어떤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가'로 드리프트를 해버린다는 것이다.
이건 독립적인 개인의 도덕적/윤리적 주장으로는 충분히 성립할 수 있다. 문제는 그전까지 논의하던 문제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인데, 최재천 교수는 앞쪽에서의 생태학적 중립성을 이러한 개인의 도덕적 기준으로 깨부순 뒤에 이를 지지하기 위해 편파적인 근거를 사용하고 있다.
자세한건 아래에서 알아보고, 일단 지금은 제시된 도덕적 주장에 집중해 보자. 사실 최재천 교수의 도덕적 주장은 그 자체로 심각한 논리적 비약을 포함하고 있는데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에서 반드시 '따라서 TNR 후 다시 방사하고 급식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자동으로 연역되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길고양이를 만들어냈다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도덕적 문제까지는 어떻게든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어떤 책임을 누구에게 어느 정도 부담시키고, 어떤 방식으로 수행할 것인가' 등, 특정한 관리방향과 정책비용의 귀속으로 넘어가는 논리적 단계는 완벽하게 생략되어 있다.
고양이를 유기한 적도, 반려묘를 키운 적도 없는 시민에게까지 자신들의 도덕적 기준에 입각한 동일한 책임을 귀속시키는 것은 사실상 도덕적 전체주의에 가까우며, 더욱이 그 책임이 왜 일반조세를 이용한 TNR과 급식등의 고양이에 대한 복지를 우선한형태여야 하는지는 별도의 형평성 검증과 여론의 성립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책임은 정책 근거이고, TNR·입양·보호·제거는 정책 수단이기 때문에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는 오히려 등록·유기방지·입양·보호·제거를 포함한 여러 정책을 모두 정당화할 수 있고, TNR이나 급식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일반적 논거가 될 수 없다. 즉, 똑같은 책임론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문제이므로 고양이를 야생에 방치하지 말고 포획·입양·보호하고, 수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인도적 안락사를 포함하여 인간이 끝까지 생태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최재천 교수는 개인의 도덕적 기준으로 영상의 방향을 튼것도 모자라, 본인의 도덕적 주장조차 심각한 논리적 비약을 포함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이번 Part 2에서는 이건 그리 심각한 수준도 아니다. 최재천 교수의 영상의 진짜 문제는 본인의 도덕적 관점을 정당화하고 보편 법칙으로 만들기 위해 본인이 주장하는 방식들의 한계점을 무시하고, 수준 낮은 근거들을 제시하는 내로남불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진짜 심각한 문제이다.
2. 가장 큰 모순 ? TNR과 급식소 문제에 들어가자 갑자기 증거 기준이 낮아진다
이 부분이 내가 볼 때 영상에서 가장 심각하고, 비학술적이며, 비양심적이기까지 한 중심 오류이다.
최재천 교수는 초반에는 ‘한국에서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단편적 관찰로 결론 내리면 안 된다, 실험 연구의 통제 어쩌고 저쩌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건데 어쩌고, 저같은 생태학자는 그렇게 단편적으로 판단하지 않네 어쩌고’ 하면서 온갖 연구자료를 요구하더니, TNR에 대해서는 갑자기
“대부분의 지자체들의 데이터에 의해서 인정된다.”
라고 상당히 강한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부분의 지자체 데이터”가 무엇인지 전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새덕후는 이미 한국의 TNR에 관한 지자체 데이터가 극도로 왜곡 되었으며 부정확하다고 반박한 바 있고, 여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한국에서 TNR의 성공적 케이스 (서울, 전국)에 대한 반박에 적어놨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더 결정적인 건 이 바로 다음인데, “그동안 제가 관심을 두고 관찰한 우리 동네에서는요. 지난 한 5, 6년 동안… 숫자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거든요.”..... 라는, 굉장히 단편적이고 비학술적이며 통제되지 않은 개인의 관찰로 TNR 정책의 효과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쯤 되면 거의 완벽한 대비가 만들어진다.
고양이 포식 문제
- 단편적 관찰로 결론을 내리면 안 됨, 그건 학술적 자세가 아님.
- 난 학자라 그런 짓 안 함.
- 사실 전 세계의 다양한 환경에서 장기간 추적 연구되어 온 학술 연구 자료가 있지만, 그건 일단 언급 안 함.
VS
TNR 효과
- 내 동네 5~6년 관찰해 봤는데 잘 유지되고 있던 것 같더라, 효과도 짱짱함. 내가 봤음.
- TNR 좋음.
- 마찬가지로 전 세계의 다양한 환경에서 장기간 추적 연구되어 온 TNR의 한계점을 말하는 연구 자료가 있지만, 그것도 일단 언급 안함.
이러한 구도를 만들며, 앞에서 자신이 세운 증거 기준을 자신이 선호하는 정책에는 적용하지 않는 기적의 내로남불을 보여주는 셈이다.
- 급식소 효과를 주장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로 증거 수준이 처참할 정도로 낮다.
최재천 교수는 “급식소가 있기 때문에 고양이들이 굳이 숲속까지 들어가지 않도록 컨트롤하고 있다.” 는 취지로 이야기를 하면서 증거랍시고 자료를 제시하는데, 화면에 나오는 자료는 최재천 교수가 그렇게 좋아하는 ‘학술적 연구자료’가 아닌 2020년 서대문구 급식소 민관협력 사업을 소개하는 데일리벳 신문 기사다.
그것도 결과보고가 아니라, 급식소를 설치하고, TNR을 시행하고, 자원봉사자가 관리할 예정이라는 사업계획/협약 소개에 가깝다. 즉 이것으로는 고양이가 숲에 덜 들어갔는지, 사냥 행동이 감소했는지, 개체수가 감소했는지, 야생동물 피해가 감소했는지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심지어 여기서도, 무려 본인의 슈퍼 학술적인 ‘생각’으로 길고양이 급식이 고양이의 숲 진입을 억제하고 있다는…. 수우퍼어어 학술적 주장을 하신다. 때문에 여기서도 최재천 교수의 초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고양이 포식문제
- "단적인 관찰을 가지고 결론을 내리면 안 됩니다. 학술적 어쩌구 저쩌구…”
VS
급식소 효과
- 자기 동네 관찰 (무려 본인의 ‘생각’으로 결론!!!) + 정책 소개 기사 소개 후, 급식소/TNR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판단.
또한 “먹이가 있으니 고양이가 굳이 숲속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되게끔 컨트롤하고 있다”는 주장은 두 단계의 검증되지 않은 가정이 섞여 있는 굉장히 불명확한 문장이다.
급식 → 사냥 필요성 소멸 → 산림 진입 감소
이 구조는 첫 번째 단계부터 완전히 성립하지 않는다. 먹이가 충분해도 사냥할 수 있음은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고, 더구나 두 번째 가정인 사냥 목적이 아니면 숲에 안 들어간다는 것이별도의 행동권 추적자료가 필요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JTBC에서 기가맥힌 제목으로 신나서 뉴스도 뽑았던데, 과연 JTBC는 이 반박도 뉴스화 할까?
즉 그렇게 ‘학술적, 체계적, 통제된 환경, 숙고’ 등을 말하며, ‘아는게 없으면 결론을 함부로 내리지 못하는게 옳은 겁니다’ 라고 했던 최재천 교수는 영상 후반부에서는 확인 되지 않은 가정을 두개씩이나 섞은 문장을 그저 ‘자신의 생각만으로 그럴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리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중립적으로 생각해 봐도, 영상 후반부 만큼은 이전처럼 PD 탓을 할수는 없고, 굉장히 뚜렷한 대비를 만들어가며 본인의 감정적 애착관계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학자의 양심을 너무 팔아재낀게 아닌가 싶은 합리적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도대체 최재천 교수의 기준은 어째서 자신에게는 이토록 관대한가?
3. 주장의 실체 ? 심지어 주장하는 바도 세계적 연구 결과와 반대된다.
그렇다면, 최재천 교수가 말한 TNR과 급식소에 관한 실제 연구는 어떤 결론을 이끌어냈을까? 정말 강한 TNR 실증 연구를 가져와 보면 이야기는 훨씬 조건부로 넘어간다.
아, 혹시나 여기서도 해외의 생태 메커니즘 연구를 국내에 가져올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말하는데, 최재천 교수 본인이 먼저 시원하게 시전하셨다. ^^
Gunther et al. (2022), PNAS_Reduction of free-roaming cat population requires high-intensity neutering in spatial contiguity to mitigate compensatory effects는 12년간, 20 km² 도시 지역, intervention 전후와 지역별 중성화 강도를 비교한 장기 통제 현장 연구인데, 굉장히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결과는 상당히 균형적인데, 부분적으로 TNR을 실시할 때는 고양이 개체군이 감소하지 않았고 주변 유입 등이 문제가 됐다. 이후 도시 전체에 공간적으로 연속해서 70%를 넘는 높은 중성화율을 적용했을 때 비로소 연간 약 7%의 느린 속도의 감소가 나타났다. 그것도 번식률·생존률의 보상적 반등 때문에 효과가 제한됐고, 연구자들은 TNR뿐 아니라 먹이 등 핵심자원 관리, 입양, 아픈 개체의 안락사 등을 결합한 전략을 추가 검토하라고 권고했다.
이 외에도TNR (포획/중성화/재방사)의 효과와 케이스에 대한 오류에 관하여 글과 TNR의 근본적인 한계 & 고양이는 사냥을 잘 못해서 괜찮다? 을 참고하면 최재천 교수의 말마따나 TNR의 효과는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새덕후가 지적한, TNR이 가진 태생적 한계 부분의 문제는 최재천 교수가 은근슬쩍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세계적 연구가 넘치고 넘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당 링크에 너무 많은 예시를 적었기에, 이쯤에서 넘어가자.
급식소 문제는 사실최재천 교수의 발언과 대놓고정반대 방향의 실증연구가 너무나 명확하게 존재해서 굳이 따질 것도 없다.
Herrera et al. (2022), Biological Conservation_Prey selection and predation behavior of free-roaming domestic cats in an urban ecosystem은 워싱턴 D.C.의 도시 고양이를 카메라 트랩으로 조사한 연구인데, 무려 22,268 camera-trap nights, 고양이 관찰 33,134건, 포식물 운반 사건 등의 광범위하고 긴 시간에 걸쳐 분석된 연구다.
이 연구는 보조먹이가 많은 지역일수록 고양이 포식 사건이 많았고, 산림 가장자리에 가까울수록토착종을 잡을 확률이 높아졌다는 결과를 명시한다. 때문에 연구진의 정책 제안 또한 도시숲 주변에 고양이 exclusion buffer를 두고, 급식 장소의 공간적 위치를 고려하라는 것이었다.
이건 최재천 교수의 “먹이를 줘서 숲까지 안 들어가도록 컨트롤하고 있다.”라는 수우우우퍼 학술적 생각에 정확히 반대된다. 물론 우리는 내로남불을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워싱턴 결과 = 서울 결과라고 쓰면 안 되고, “적어도 급식하면 산림 진입이 줄어든다는 일반 법칙은 성립하지 않으며, 반대 방향의 도시 현장 자료가 존재한다.”라는 안정적인 문장으로 일단 만족해 보자.
Maeda et al. (2019), Scientific Reports_Predation on endangered species by human-subsidized domestic cats on Tokunoshima Island는 일본 연구라 한국 독자에게 더 직관적이기도 하다. 배설물 + 안정동위원소 분석을 조합했는데, 고양이들이 상당 부분 인간이 제공하는 먹이에 의존하면서도 자연지역으로 이동해 희귀 야생동물을 포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설물의 20.1%에서 산림종 흔적이 확인됐고, 연구자들은 인간의 먹이 제공이 포식자를 유지해 자연지역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지적했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98-019-52472-3?utm
이 연구가 특히 좋은 이유는 “밥을 먹고 있으니까 야생동물을 잡을 필요가 없다.” 라는 수우우우퍼 학술적 생각이 왜 생태학적으로 위험한지 보여준다. 고양이는 인간 음식으로 생존과 높은 밀도를 유지하면서, 사냥은 별도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2019년 칠레 반려묘 조사에서도 자유급식(ad libitum feeding) 여부와 먹이를 집으로 가져오는 행동 사이에 유의한 관계를 찾지 못했고, 연구자들은 적절히 먹이를 공급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냥 동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정리했다. 포식 행동의 포획 → 살해 → 섭취 단계가 어느 정도 독립적이기 때문에 배고픔이 없어도 앞의 두 단계는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6826938/?utm
- 결국은 내로남불.
여기까지 본 최재천 교수의 언행은 심각하게 이중적이다. 고양이의 생태적 피해를 인정하는 데에는 통제된 장기 생태연구를 요구하면서, 자신이 긍정하는 관리정책의 효과를 이야기할 때는 동일한 수준의 검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1 “대부분의 지자체 데이터에서 TNR이 학살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인정된다.”
→ 정확히 어떤 지자체, 어떤 비교 설계, 어떤 지표인지 제시되지 않음. 증거라고 들고 온 게 사업 홍보 신문 기사.
2 “우리 동네는 5~6년 동안 숫자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 본인이 앞에서 경계한 바로 그 개인적 관찰.
3 “급식소 덕에 고양이가 숲속까지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게 컨트롤한다.”
→ 이건 심지어 본인의 ‘생각’일 뿐, 레퍼런스조차 없음.
그러면서 반대편에는
환경오염·서식지 파괴·기후변화 등을 모두 물리치고, 포식자의 압력 때문에 개체수가 급감했다는 체계적 연구가 나온 뒤에야 규제하자는 수준을 요구한다.
불확실성을 이유로 한쪽의 주장을 보류시키면서, 다른 한쪽의 주장은 훨씬 낮은 증거 수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학술적이지도 않고, 학자고 뭐고 할 것 없이 어느정도의 공교육만 받은 사람이라도 충분히 ‘이중적’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고양이 피해를 단정하기에 한국에선 관련 연구 자료가 부족하다면, 정확히 같은 이유로TNR과 급식이 살처분보다 훨씬 우월하며 고양이 개체수를 줄이고 자연 생태계에 피해를 막는다고 수준낮은 근거를 들어가며 단정해서는 안된다.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에만 엄격한 증거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각 관리수단을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이다.
4. 결론부 ? ‘모른다’에서 시작해 상대방의 주장을 ‘잘못된 사랑’으로 결론짓는 기적
라고 말하는 최재천 교수, 하지만 이 말이 자기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듯 하다.
최재천 교수의 마지막 결론은 영상을 시작하며 자기 자신이 설정한 초기 전제를 스스로 뒤집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표면적 주장을 “솔직히 얘기하면 제가 답을 모르기 때문에…”, “아는 것이 없으면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등으로 깔고가는 최재천 교수는, 영상의 마지막에 가서는 길고양이에 대한 살처분을‘잘못된 사랑’, ‘불합리하고 어색한 일’이라고 결론 짓고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해 수준 낮은 근거를 제시하거나 사실관계를 무시한다.
과학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상대의 결론은 보류시키면서, 자신의 윤리적·정책적 결론은 그 불확실성의 제약을 받지 않는 듯 보인다.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고양이의 생태적 영향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과, 같은 자료 부족 속에서도 고양이 제거는 ‘불합리한 주장’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수준의 주장이지만 최재천 교수 본인에게는 기적적으로 동일시 되는 것이다.
- 또 나오는 상대방 주장 왜곡과 비판 대상의 자의적 선택
이쯤에서 사실관계를 한 번 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Part 1에서도 잠깐 확인했듯이, 새덕후는 최재천 교수가 말하는 것과 다르게, 새 개체수 회복을 위해 길고양이 살처분을 주장한 적이 없다. 새덕후는 길고양이가 생태계 전반에 끼치는 영향을 막기 위해, 보존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살처분을 여러 방법 중 하나로추가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이 주장은 새덕후의 정책 청원도 아니다...)
여기에 더해 본인이 정말 충격받은 점은, 최재천 교수가 영상의 초반부부터 은근슬쩍 비판의 대상 여러 개를 잘 구분되지 않게 섞으면서 그것을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만족하는 결론부로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영상의 초반을 새덕후의 청원을 비판하며 열다가, 갑자기 제 3자의 사람들이 '고양이가 새 물고 뛰어가는 걸 봤기 때문에 (본인의 주장,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증명이 안됨. 참으로 학술적.) 고양이가 원인이고, 새 개체수 회복을 위해 고양이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이는 간헐적 관찰임을 말한다.
물론 최재천 교수도 이 부분에서 ‘사람들이’라는 제 3자 주어를 사용해, 이 간헐적 관찰이 새덕후에게서 나온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문제는 영상이 새덕후의 청원, ‘사람들’의 단순한 관찰, 그리고 살처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하나의 연속된 논쟁 대상으로 배치하고, 끝에가서는 이 혼재된 비판을 새덕후가 하지도 않은 주장 - 새를 사랑하기 위해 고양이를 죽이자 - 으로 교묘하게 연결 시켜 비판한다 것이다. 그 결과 이 영상은 새덕후의 주장에 대한 근거 역시 단순한 목격담 수준에서 시작된 비과학적이고 허황된 혐오로 인식되게 만든다.
따라서 이 구조의 진짜 문제는 영상이 새덕후가 길고양이의 생태 피해와 TNR의 한계등을 대해 제시한 해외 생태 메커니즘에 관한 수많은 연구 자료와 국내의 상황들을 통째로 날려 버리고 (혹은 무시하고), 그 근거의 빈자리를 '사람들이 고양이가 새죽이는거 봤던것 때문' 이라는 비과학적 주장으로 체워넣는다는 것이다.
이 작업을 한 뒤 최재천 교수는 영상 내내 새덕후가 2년 넘게 제시해 온 길고양이의 피해, TNR의 한계, 살처분등에 관한 세계적 연구 논문과 국내외 영향에 관한 연구, 본인이 발로 뛴 현장 케이스등을 단 하나도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들이 고양이가 새죽인거 봤던' 비학술적 주장만 주구장창 반복하는 구조를 만들어 새덕후가 하지 않은 주장을 비판하는데 연결하여 사용한다.
혹자는 이것을 그냥 단순한 실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는 게 없으면 결론을 함부로 내리지 못하는 게 옳은 겁니다."라고 말하던 학자가, 상대방이 하지도 않은 주장을 만들고, 제시한 근거의 수준을 낮추기 위해 구조를 흐뜨러뜨리고, 개인의 도덕적 관점에 비추어 상대방의 주장을 '비윤리적이고 불합리한 요구'라고 쉽게 결론 내렸다는 점에서, '학술적 엄밀성'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사람의 영상에 어울리지 않는 수준 낮은 구조임은 부정할 수 없을것 같다.
4. 검증 - 살처분 그 자체에 관하여
그렇다면 학문적 엄밀성을 그토록 좋아하시는 최재천 교수는 살처분 또는 제거가 TNR보다 실제로 열등하다는 체계적인 비교 근거를 충분히 제시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영상에서는 그런 비교나 분석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최재천 교수의 주장과는 다르게,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캣맘 캣대디들 권위 좋아하니까) ‘생태연구기관 및 생태학계’에서는 ‘살처분을 생태보전의 한 방식'으로 엄연히 인정하고 사용한다.
GISD (Global invasive species database) 국제 침임외래종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고양이' -
캣맘 캣대디들이 우기는 것과 다르게 '야생 고양이 Feral Cat'만이 등록된 게 아니라 집 고양이를 포함한 고양이 일반 종 자체가 등록되어 있다.
고양이를 세계 100대 침입 외래종으로 지정한 IUCNSpecies Survival Commission은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활동하는 11,000명 이상의 전문가 네트워크이고, 그 산하 Invasive Species Specialist Group은 침입종 문제에 관한 정책·기술 자문을 담당한다.
IUCN/SSC가 출판한 Island Invasives: Eradication and Management에는 아예 Review of feral cat eradications on islands라는 장이 들어 있는데, 이 리뷰가 당시 확인한 것만83개 섬에서 87건의 성공적인 고양이 박멸 프로그램이었다.
섬이라는 환경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것 같은 캣맘·캣대디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애초에 고양이 살처분의 '정당성'은 섬과 도시 등에 따라 달리 적용되지도 않지만) IUCN은 침입종 관리 자체를eradication → containment → control 이라는 정식 보전수단으로 다루고 있다. IUCN의 관리체계에는 eradication 수단으로 shooting, trapping, poisoning같은 방법까지 명시돼 있고, 최근에는 동시에 동물복지를 고려해 효과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복지 피해가 가장 낮은 방법을 택하라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https://iucn.org/our-union/commissions/species-survival-commission/about?utm
생물다양성협약(CBD)의 국제 지침도 찾아봤는데, 여기에서도 마찬가지, 어쩌면 더 일반적으로, 침입외래종의 경우 가능하다면 eradication이 종종 최선의 방법이라고까지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안전성, 생태적 2차 효과, 사회적·윤리적 수용성 등을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https://www.cbd.int/invasive/GuidingPrincIAS?utm
The Wildlife Society(TWS)는 1936년 설립됐고, 현재 전 세계 1만 명 이상의 야생동물 과학자·관리자·전문가가 참여하는,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야생동물 전문 학술단체 중 하나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2025년에 승인된 최신 'Feral and Free-Ranging Domestic Cats' 공식 Issue Statement에서 입장이 아주 명확한데, TWS는
생태계 내 방사 완강한 반대 - 최재천 교수의 주장과는 완전히 반대로 유기된 고양이를 자연 생태계에 그대로 유지하는 그 어떠한 정책(TNR 포함)도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또한 TNR이 현실에서 요구되는포획률과 폐쇄성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연구 검토를 명시했다.
완전한 제거(Removal)의 원칙 -이들은 정부와 지자체를 향해 "자연 및 도시에서 자유 배회 길고양이를 포획하여완전히 제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데, 그 수단으로, 포획 후 실내 입양, 포획 후 입양이 불가능한 개체의 경우 완벽히 밀폐된 보호 구역에 수용하거나 수의학적이고 인도적인안락사를 실시하는 것만이 생태계의 피해를 막는과학적 조치라고 명시하고 있다.
IUCN과 마찬가지로 TSW도 단순 feral cat만이 아니라 “feral or so-called community cat colonies”까지 직접 언급하면서 우리 캣맘들의 좋은 변명인 ‘야생 고양이에 해당되고 길고양이는 아니다’까지 원천 차단하고 있다.https://wildlife.org/wp-content/uploads/2026/01/TWS-Issue-Statement_-Feral-and-Free-Ranging-Domestic-Cats_Final.pdf
이렇게 조금만 찾아봐도 국제적인 학술 단체나 기관들에 의하면, 최재천 교수의 “새를 사랑하기 위해 다른 생물을 제거한다는 건 잘못된 사랑이다”라는 문장을 생태학계의 합의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글을 쓰기위해, 그리고 평소에도 관심있는 주제이니 만큼 온갖 학술 사이트를 돌아 다니면서 입장문을 찾았지만, ‘길고양이의 살처분은 엇나간 사랑이고, 비윤리적이다’라는 입장은 어떤 학술 단체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나 찾은 사람들이 있다면 좀 가르쳐 주면 좋겠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단체 정도는 찾았는데, Alley Cat Allies 집단은 TNR이 길고양이에 대한 유일한 해법이며, 길고양이를 죽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입장을 걸고 있었다. 그런데 이 단체는 학술 단체가 아닌 길고양이 보호·TNR 옹호 단체다.
논외로 이번에 발견한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혹시나 싶어서 학술 기관이 아닌 국제 고양이 복지 단체 International Cat Care (ICC)는 어떻게 판단하나 찾아봤는데, 오히려 이들은 학술적 단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우우우퍼 학술적 자세를 가진 최재천 교수보다 더 신중한 입장이었다. 이들은 민감한 보전지역에서의 culling에 대해서는 대략 “그런 방법은 대개 인도적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각 사례와 구체적 상황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수준의 신중한 방법론을 지지하며, 길고양이에 대한 보존적 방식으로서의 살처분이 엇나간 사랑이거나 비윤리적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https://icatcare.org/resources/cat_friendly_decision_making-managing-cat-populations.pdf?utm
International Companion Animal Management Coalition(ICAM) - 국제적으로 유기동물, 반려동물의 인도적 관리를 맡고 있는 이곳도 (학술 기관이 아닌 유기 동물 보호 기관에 가깝다.) 보호시설에서 관리·방사가 불가능한 길고양이에 대해 안락사 정책 자체를 인정하고 있다. https://www.icam-coalition.org/wp-content/uploads/2017/03/Humane-cat-population-English.pdf?utm
물론 이런 비학술적 기관들은 그냥 한 번 알아보자는 식으로 알아본 거였지만, 흥미로운 점은 국제적 고양이 복지 기관들 조차 최재천 교수마냥 길고양이의 살처분을 주장하는것 자체가 비윤리적이며 엇나간 사랑이고, 불합리하고 어색한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국제 보전생물학에서 “외래 포식자를 제거해서 토착 생태계를 복원한다.” 라는 발상 자체는 상당히 오래된 개념이다. 오히려 생태계 보전을 위해 길고양이·야생화 고양이를 인도적으로 제거하거나, 경우와 상황에 따라 치명적 통제(lethal control)를 사용하는 것 자체는 현대 보전생물학에서 불합리하거나, 어색하거나,반생태적인 발상이 아니다.
오히려 최재천 교수처럼, 길고양이의 살처분이나 현장 제거를 ‘엇나간 사랑’이나 ‘불합리한 요구’라고 개인의 도덕적 잣대만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위의 기관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Part 2 결론 -
1. 생태학적 신중함을 내세우던 최재천 교수는, 영상의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갑자기 개인의 도덕적 판단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넘어간다.
2. 이를 위해 자신이 지지하는 정책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그러운 증거 수준을 포용하는데, (그것도 실제 연구 결과와 맞지 않는) 사업 홍보 신문기사, 본인의 개인적 관찰, 본인의 수우우우퍼 직관적 시선으로 주장을 옹호한다.
3. 이는 영상 초반부에 길고양이 피해 이슈 쪽에 요구하던 "한국이라는 환경에서 통제되고 체계적으로 추적 연구된 학술적 자료에 근거한 학술적 판단"을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내로남불이다.
4. 또한 ‘우리가 아는 게 아직 너무 없습니다. 아는 게 없으면 결론을 함부로 내리지 못하는 게 옳은 겁니다.’ 라며 자연계의 복잡함을 말하는 생태학자가 길고양이 살처분에 대한 개인의 도덕적 주장은 은근슬쩍 생태학적 사실인것 마냥 포장하여 ‘살처분은 새에 대한 엇나간 사랑, 불합리하고 어색한 일, 비윤리적인 일’로 결론 짓는다.
5. 하지만 국제적 생태학계에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TNR과 급식이 가진 한계를 명시하고, 살처분을 보존생태학의 한 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6. 위의 전 과정에 걸쳐, 최재천 교수는 이러한 국제 생태학계의 입장문이나 국제/국내에 존재하는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는 연구 자료들을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끝.
다음 글부터는 다시 냥신TV에 대한 반박을 이어 나가 보도록 하겠다.



























???: 교수님이라고 하라고!
교수 = > 내가 교수고 내말이 맞는말이니까 니들이 져 반박안받음
모르겠고 지금 최재천 교수님을 최재천 교수라고 한거임?
권위를 너무나 좋아하는 그쪽 분들은 벌써 이런 기가차는 제목으로 뉴스고 뭐고 만들어서 뿌리는 중
투명한 그 언론사 답네요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공공화
저 사람이 인용한 논문은 외국사례라 적용하면 안되지만
내가 인용한 논문은 외국사례여도 괜찮다는 개똥논리
헉 너 지금 님 짜를 안붙인거야?
교수는 개뿔
캣대디라고 해야하는데
학자이고 교수라면
저게 가장 가지면 안되는 태도 아닌가
이런 글이 있는줄 몰랐네. 시간 날 때 읽어봐야겠다!
최재천 교수님께서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자주 범한다는 비판이 있으시다
바로 비추 와바박 박히네
캬 순식간에 비추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