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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시네마" 담론이 문제가 있는 지점.mcu +4 [15]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76402810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시네마" 담론이 문제가 있는 지점.mcu


[데드풀과 울버린] 예고편에서 데드풀이 내뱉은 “This is cinema.”라는 대사는

한국어 자막에서 “이건 그런 영화니까”로 옮겨졌다.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얼핏 보면 데드풀 특유의 자기조롱처럼 보일 수 있다.

이 영화는 원래 그런 영화이고, 데드풀은 원래 그런 캐릭터니까.

하지만 이 번역은 단순한 의역이 아니라 원문의 농담이 향하는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은 사례였다.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This is cinema.”는 “우리는 원래 이런 낮은 종류의 영화니까 이해해달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노골적이고, 팬서비스적이며, 불경한 순간 위에 “cinema”라는 고급어를 일부러 얹어버리는 데드풀식 도발이다.

"이런 남정네 둘이서 붙어서 뒹구는 이 유치한 이야기가 바로 [시네마]"라는거다.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그런데 “이건 그런 영화니까”라는 번역은 이 도발을 항복문으로 바꾼다.

마치 마블이 드디어 자신들의 위치를 인정하고,


“우리는 스콜세지가 말한 그 테마파크 영화입니다, 닷시는 페이즈4같은 뻘짓을 안하겠습니다”
라고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들리게 만든다.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흥미로운 것은 실제로 일부 관객들이 바로 그 지점에 환호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 "오역" 자막을 두고 마블이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고 받아들였다.

괜히 스콜세지의 시네마가 되려 애쓰지 말고, 진지한 예술인 척하지 말고,

그냥 관객이 원하는 오락과 팬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는 것이다.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하지만 이 환호에는 이상한 패배감이 숨어 있다.

시네마는 저 위에 있고, 마블은 그 아래의 테마파크다.

테마파크로만 잘 가동하면 만족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해방이 아니라 항복이다.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마틴 스콜세지는 영화사의 거인이다.

그의 영화들은 위대하고,

그가 극장과 영화문화의 변화에 대해 느끼는 위기의식 역시 가볍게 다룰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산업에 대한 문제제기는 날카롭고, 소신이 강하다.

프랜차이즈 영화가 극장을 장악하고, 중간 규모의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으며,

알고리즘과 시장조사가 창작의 위험을 줄이는 현상은 실제로 존재한다.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그러나 문제는 그가 “나는 그런 영화에서 내가 사랑하는 영화적 경험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그건 시네마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순간 취향의 고백은 정의의 선포가 되고, 산업 비판은 존재론적 추방이 된다.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스콜세지 감독의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것이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종류의 문제라고 말한다.


"한국어로는 다 똑같은 영화라고 번역돼서 불판 땡긴거지

원래부터 "시네마"라는 단어 "무비" "필름" 단어 다 따로 쓴다...."


마블 영화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테마파크에 가까운 다른 종류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저 다른 분류인걸 받아들이면 그만인데 왜 열폭하냐는거다.



그러나 이 말은 정말로 중립적인가?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스콜세지가 “시네마” 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들은 대개 인간적 경험, 감정적 위험, 미스터리, 계시, 개인의 비전 같은 것들이다.

반대로 마블과 프랜차이즈 쪽에는 상품, 시장조사, 관객 테스트, 테마파크, 소비, 안전한 변주 같은 단어들이 붙는다.


이러면 “우열은 없다”는 말은 사실상 "그냥 예의상 발언"에 불과하다.


이미 가치 있는 단어들은 한쪽에 몰려 있고,

다른 한쪽에는 낮은 것으로 여겨지는 단어들이 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저런 단어들을 비교하고서 "그저 다를 뿐 우열이나 호오는 없는 중립" 이라고 말할수 있는가?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그러므로 스콜세지 담론의 문제는 그가 마블을 싫어했다는 데 있지 않다. 어떤 감독이든 어떤 장르를 싫어할 수 있다.


마블 영화 중에는 실제로 안일한 작품도 있고, 공장식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있으며,

죽음과 상실조차 다음 편을 위한 장치로 미뤄버리는 약점도 있다.


그러나 어떤 영화가 빈약하다고 해서 영화가 아닌 것은 아니며, 상기한 [시네마]의 요소가 절대적 부재하다 말할수도 없다.

나쁜 소설도 소설이고, 진부한 음악도 음악이며, 실패한 회화도 회화다. 마찬가지로 공장식 블록버스터도 영화다.


문제는 “시네마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시네마냐'여야 한다.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또 스콜세지가 마블 영화 전체를 세밀하게 본 뒤 이런 판정을 내린 것도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비판요소가 될수 있다.

그는 마블영화를 제대로 본적이 없다고 했다. 시도는 해봤다고만 했다.


물론 모든 작품을 다 보지 않아도 산업 구조는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극장 시장이 프랜차이즈에 잠식되고 있다”는 말과 “그 영화들은 시네마가 아니다”라는 말은 같은 층위가 아니다.

전자는 산업 비판이고 후자는 미학적 추방이다.


작품군 전체를 충분히 읽지 않은 채 그 가능성 자체를 영화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은

비평이라기보다 분류권력의 행사에 가깝다.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시네마" 담론이 문제가 있는 지점.mcu_12.webp



그리고 대중은 이 분류권력을 너무 쉽게 승인했다.


“스콜세지 정도 되는 거장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마블은 돈도 많이 벌지 않느냐.”

“그냥 자기 위치에 만족하면 되지, 왜 시네마라는 말까지 탐내느냐.”

"파이기가 저기 열폭해서 예술성 챙긴다고 하다 페이즈4 조진거 아니냐"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이런 사고방식은 대중영화를 계속 낮은 자리에 묶어둔다.

흥행하면 “돈만 번 상품”이 되고, 실패하면 “예술도 아니고 장사도 못한 폐기물”이 된다.

진지한 주제를 말하면 “오락영화가 예술인 척한다”고 하고, 오락에 충실하면 “그러니까 시네마가 아니다”라고 한다.


이 구조 속에서 대중영화는 이길 방법이 없다.


그것은 항상 너무 상업적이거나, 충분히 예술적이지 않거나,

성공했으니 더 이상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대중적 성공은 예술적 존엄의 반대말이 아니다.

흥행은 작품의 모든 것을 증명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작품의 고뇌와 형식을 지워버리는 면허도 아니다.


이 점에서 스콜세지의 발언은 단순한 취향 발언을 넘어선다.

그는 마블을 싫어할 수 있다. 프랜차이즈 영화의 산업적 지배를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시네마”라는 단어를 자기 세대, 자기 경험, 자기 미학이 사랑한 방식으로만 봉인할 수는 없다.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는 처음부터 고상한 예술만이 아니었다.

영화는 마술쇼였고, 서커스였고, 멜로드라마였으며, 연속극이었고, 괴수영화였고, 스타의 얼굴을 보러 가는 집단적 의식이었다.

테마파크적 쾌감은 영화 바깥의 오염물이 아니라, 영화가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한 성질이다.


(조르주 멜리에스에게 헌사와 구원을 보내는 영화인 [휴고]까지 만드신 분이 대체 왜 이런 태도를 보이신다는 건가?)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데드풀과 울버린]의 “This is cinema.”는 바로 그 경계선을 조롱하는 대사다.

데드풀은 스콜세지식 시네마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이 시네마 바깥의 테마파크라고 얌전히 물러서지도 않는다.

그는 피범벅 팬서비스와 멀티버스 장난질, 스타 페르소나의 귀환과 관객의 환호를 한데 끌고 와서

가장 고상한 단어를 가장 불경한 장면 위에 꽂아버린다.

“이런 것도 시네마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묻는 대신, 그냥 “어 시네마야~”라고 말해버린다.


그 뻔뻔함은 우스꽝스럽지만, 동시에 중요한 반격이다.

“이건 그런 영화니까”는 너무 얌전하다.

그 문장은 대중영화에게 배정된 하층 좌석에 스스로 앉는 말이다.

하지만 “This is cinema.”는 다르다. 그것은 그 좌석표를 찢는 농담이다.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는 인간의 죄의식과 침묵을 응시하는 예술이기도 하지만, 관객이 한순간에 환호하는 집단적 쾌락이기도 하다.

마틴 스콜세지는 위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한 영화만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대중영화가 자신의 존엄을 요구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네 위치에 만족하라”고 눌러버릴 것이 아니라,

그 요구가 영화라는 매체의 영토를 어디까지 넓히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This is cinema.”는 그래서 농담이면서 선언이다.

그것은 “우리는 그런 영화니까”가 아니라, 더 단순하고 더 뻔뻔한 말이다.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이게 [시네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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