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아카의 다비가 생각하는 자기 자신
비슷하게 가정사에 비롯한 과거를 지닌
시가라키, 토가와 비교해도 두드러지는 특징이,
토우야는 목표로 삼은 명제에 '나'가 극도로 없음.
시가라키는 '나'는 지배하는 게 아니라 다 파괴하고
싶다면서 올포원에게 저항할만큼 에고가 강하고,
토가도 '나'는 내 방식대로 행복해질거다 라고 하는데,
토우야는 자신의 목적을 말하는 대사에서
대부분의 주어가 '당신', '아버지', '엔데버'임.
즉 삶의 의미를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으로 규정함.
아버지가 고통받는 걸, 파멸하는 걸 보고 싶고
그 결과로서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자기 목숨도 '아버지'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소모품 정도로 간주함.
실제로 다비는 자신이 불로 사람을 해치면서도
'엔데버의 화염에' 또 사람이 죽었다는 식으로,
자신을 마치 엔데버의 연장처럼 취급함.
이는 체육제를 계기로 화염 개성을
엔데버가 아니라 '내 힘'이라고 인정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고 한 쇼토와 대비됨.
즉 다비의 심리의 가장 근본적인 기형성은
극단적으로 낮은 자존감과 의존성에 있음.
자신의 존재와 행적 전체를 아버지의 행동의 결과,
아버지의 영향 하에서만 규정하고 해석하려 하는 거.
그러니까 '아무리 슬픈 과거가 있어도
결국 사람을 죽인 건 네 선택'이라는 말은
다비한테 아무래도 상관없는 정론이 됨.
토우야에게 자기의 삶은 이미 사라졌고
'엔데버의 죄의 결과'로만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비유적으로 말해서 토우야가 보는 자기 자신은
아버지가 제대로 안 끄고 버린 담배꽁초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임.
"나는 쓰레기고, 존재의의가 없고,
그러니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는데,
그래도 아직 '불이 붙어 있으니(=살아있으니)'
더 크게 번져서 엿이나 먹여보자"
이 이상의 주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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