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게 실시간 커뮤니티 인기글
종합 (4516126)  썸네일on   다크모드 on
전피디 | 25/09/17 11:03 | 추천 14 | 조회 798

[ 시그널, MB에게 보내는 권성동의 마지막 구조신호 ] +106 [5]

오늘의유머 원문링크 https://m.todayhumor.co.kr/view.php?table=humorbest&no=1787928

[ 시그널, MB에게 보내는 권성동의 마지막 구조신호 ]


정치적 불사조(不死鳥) 권성동이 사그라진다.

질겼던 생존의 역사가 마침내 법 앞에서 멈췄다.


2025년 9월 17일 새벽, 권성동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윤석열과 같은 곳에 갇힌 것이다.


“증거인멸 염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통일교 측으로 받은 1억 원이 구속사유다.

차명폰 사용 등 그가 동원한 필사적인 방어 기제가

역설적으로 구속의 빌미가 되었다.


특검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현역 의원 수감은, 권성동이 처음이다.

금메달이다. 일단 축하한다.


그런데, ‘이제서야?’라는 탄식이 나온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부터 내란 개입설까지 그는 살아 남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 ‘강릉의 호족’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 권력의 최상층부를 활보하며

법의 칼날 위에서 그토록 건재할 수 있었을까?


그의 구속은 단순한 개인의 몰락이 아니다.

이는 한 시대를 풍미했고,

퇴임 이후에도 막후 영향력을 행사해 온 거대한 정치 네트워크,

바로 ‘이명박(MB)과 그의 사람들’ 종언을 알리는 신호다.


- “생존의 기술: 법률 기술자와 지역 권력의 결합”


권성동의 정치적 생명력은

‘법률 기술’과 ‘지역 권력’의 교묘한 결합에서 나왔다.


인천지검 특수부장까지 지낸 15년의 검사 경력은

그에게 시스템의 작동 원리와

법망의 경계를 읽는 기술을 체화시켰다.


강원랜드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측근 11명의 채용을 청탁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그는 2022년 2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확정받았다.


법원은 광범위한 비리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권성동이 ‘직접적으로’ 청탁했다는 증거는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심지어 수사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는

담당 검사(안미현 검사)의 폭로마저 흐지부지됐다.


오히려 이 사건은 그가 막강한 정치력을 가졌다는 증거가 됐다.


이후, 강릉에서의 입지는 더 굳건해졌다.

이런 그의 힘은,

2020년,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음에도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복당하는 ‘강원도 절대권력’으로 진화한다.


권력의 원점(原點), 이명박과의 조우


그가 중앙 권력의 심장부로 진입한

결정적 계기는 2007년, 이명박과의 만남이었다.


이 끈질긴 공생 관계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의 정치 역정을 설명할 수 없다.


이 둘의 ‘악의 동맹’은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시작됐다.

당시 변호사였던 권성동은

이명박 후보의 아킬레스건인 BBK 주가조작 의혹을 방어하는

핵심 실무진(후보검증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MB의 치명적인 법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패’ 역할을 수행하며 깊은 신임을 얻었다.


대선 승리 후, 보상은 확실했다.

2008년 6월, 청와대 법무비서관 임명.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이 핵심 요직에서 권성동은

이명박 정부의 사법 라인을 관리하는 실세로 자리매김하며

‘친이계’의 핵심으로 공식 데뷔했다.


그는 정권의 충실한 수호자였다.

2012년 내곡동 사저 특검 당시,

여야 합의 특검법안에 제동을 걸며 법안 처리를 지연시킨 행보는

그가 누구에게 충성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 “충성의 증명과 전략적 계산”


이명박의 퇴임 후에도

권성동은 MB 정부의 유산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자처했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국정조사와

2014~2015년 ‘해외자원개발(자원외교)’ 국정조사에서

연이어 여당 간사를 맡았다.


그의 임무는 명확했다.


‘MB 방탄.’

그는 이명박의 증인 채택을 결사반대하며

야당의 공세를 최전선에서 막아냈다.


동시에 그는 냉철한 정치 기술자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비박계의 핵심으로 생존했고,
2016년에는 국회 법사위원장으로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위원장을 맡는

역설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헌법 수호라는 명분 이면에,

경쟁 계파인 친박계를 궤멸시키고

친이계가 다시 권력을 잡을 공간을 확보하려는

고도의 전략적 계산이 깔린 행보였다.


그의 충성심은 2018년 3월,

MB가 구속되던 밤에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논현동 자택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켰다.


몰락한 권력자의 곁을 지키는 이 정치적 행위를 통해

그는 친이계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절대적으로 공고히 했다.

이후 공개적으로 이명박의 사면을 촉구했고,

2022년 12월 MB가 사면되자

‘90도 인사’를 하며 주군의 귀환을 맞이했다.


캠프에서 청와대, 국회, 그리고 퇴임 후까지.

이 연결고리는 단 한 순간도 느슨해진 적이 없었다.


- “풀리지 않는 질문: 자금과 네트워크의 생명력”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권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이명박과 그의 세력은 어떻게 건재했으며,

권성동은 어떻게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의 좌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지?


MB는 다스(DAS) 횡령과 뇌물 등으로

징역 17년을 확정받았지만(2020년),

곧 사면·복권됐다(2022년).


하지만 그가 연루된 막대한 규모의 부패 스캔들은

여전히 의문을 남긴다.

해외 자원 개발 과정 등에서 제기된 천문학적인 비자금 의혹,

그 거대한 돈은 지금, 과연 어디에 있을까?


혹시, 이명박 세력이 정치적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막대한 자금력과, 권성동으로 대표되는

충성스러운 네트워크의 조직력 때문은 아닐까?


결국 그 비자금이 친이계의 생명줄이었고,

권성동은 그 비자금 만드는 방법을

윤석열과 김건희에게 전수하며,

자신의 ‘불멸’을 보장 받은 것은 아닐까?


친이명박계는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이라는 모자란 친구를 만난다.

정치 신인 윤석열에게 부족했던 조직과 전략,

정치적 인프라를 제공한 것이 바로 친이계였고,

권성동은 그 중심에 있었다.


- “마지막 시그널”


윤석열을 통해 권력의 정점에

다시 선 권성동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의 오만한 언행은 ‘강릉의 왕’이자

‘기득권의 리더’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 당시,

“7급에 넣어줄 줄 알았는데 9급에 넣었더라”,

“강릉 촌놈이 서울에서 어떻게 사냐”라는 그의 발언은,

공직을 전리품으로 여기는

그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정감사장에서는 “혀 깨물고 죽지”라는

폭언을 서슴지 않았고,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대통령과의 ‘내부 총질’ 텔레그램 메시지가 노출(2022년 7월)되며

정권의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심지어 2025년 2월,

청계재단을 찾아가 MB에게 조언을 구하며,

퇴임한 보스의 영향력을 현 정권에 연결하는 역할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생존 게임도 끝났다.

권성동의 구속은 곧 이명박 시대의 실질적인 종언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거대한 권력 회로 하나가 ‘아웃’ 된 것이다.


BBK 의혹 방어에서 시작되어,

2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끈질긴 공생의 역사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탁!’, 불이 꺼졌다.

그런데 암흑 속에서, 소리가 들린다.

“또 또 또 도스 또 또 또…”

권성동이 이명박에게 보내는 구조 신호, ’SOS’다.


둘 간의 마지막 시그널이다.


오는새벽, 음모론자가 된다

manipulate_img(this)

[신고하기]

댓글(6)

이전글 목록 다음글

6 78 9 10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