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문사철은 한 세트인지 알아보자
오늘은 취업이 안되는 3대 전공
문사철이 어째서 한 세트인 것인지 간단히 알아보자
E.H. 카
많은 유게이들이 문학이나 철학보다는 역사가 익숙할테니
역사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예전에 사람들은 역사를 수학이나 과학처럼, 명백하게 밝힐 수 있다 생각했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에 대해 다뤄본다 치면,
사람들은 1차 사료인 조선왕조실록이나 난중일기 등을 모아 비교해가며
가능한 객관적인 진실, 과학적이고 검증 가능한 팩트만을 도출하려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등장한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조금 입장이 다르다.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사실 그 자체를 초월해
그 사건이 지금까지 어떻게 기억되었고, 우리 사회에 어떤 의의가 있는지
또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탐구한다.
진짜 러프하게 말해,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명량대첩이라는 400년 전 사건이 우리에게 대체 뭔 의미가 있는지를 탐구한다.
명량 대첩이 우리에게 단순히 역사적 대승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명량 대첩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고취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상징적인 전투다
롤랑 바르트
역사에서 은유와 담론, 텍스트 너머의 진실을 포착하려는 이러한 움직임은
재미있게도 문학 비평의 문제 의식을 공유한다.
후기 구조주의 문학 비평이 신선놀음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상은 아주 몹시 매우 존1나리 중요하다.
평생 추위와 눈이라고는 모르는 아프리카 사람에게
유부녀 설녀 쩡을 보여준다 생각해보자
이 쩡에 나오는 '설녀'라는 요괴가 현실적으로 다가올까?
'?? 얼어죽을 만큼의 추위? 눈?? 설?산? 그게 뭔데 씹덕아' 할 것이다.
이렇게 후기 구조주의 문학 비평에 의하면
같은 텍스트라도 읽는 주체에 따라 얼마든지 그 내용이 다르게 독해될 수 있다
텍스트는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을 유혹하는 미끼 같아서, 끊임없이 잡힐 듯하면서도 끝내 미끌어져, 우리에게 잡히지 않는다.
이게 데리다가 주장한 차연 개념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200년쯤 뒤, 명량대첩이 어떤 의미로 사람들에게 읽힐지 아직 아무도 모르는 거다.
우리는 지금의 사회, 지금의 사상, 지금의 한계를 통해 이야기를, 역사를 해석하고 사유한다.
또 한국에 엄청나게 많은 호랑이 설화들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 가능하다.
국토의 70%가 산이라 어쩔 수 없이 산과 밀접하게 관계했던 조상님들에게
호랑이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마주치면 죽는 말 그대로의 재앙이었다.
한국의 호랑이 설화는, 호환에 시달려 온 조상님들의 생활과 크게 맞닿아 있다.
한국의 이런 지리적, 생태적 환경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호랑이 설화가 괴담에 불과하겠지만
조선 사람들에게 이토록 호랑이 설화가 많은 것은 현실의 은유이자 경고, 생존의 편린이다.
그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차이가
같은 호랑이 설화를 접하더라도, 그 느낌을 크게 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 뭐...역사와 문학의 관계는 대충 알겠다.
헌데 둘 다 글로 쓰여진 텍스트 아닌가?
인간은 텍스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글과 언어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그렇다. 그리고 거기부터는 철학의 영역이다.
나는 행복한 사람들에게 질문거리를 들고 오는 오리가 되고 싶지 않기에 여기서 글을 접는다.
그리고 문제는 이런 철학적인 사유도 결국 먹고 살아야 할 수 있는것이다
게시판에서 같은 사실을 두고 대첩이 나는 것도 결국 사실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건 개인별로 전부 다르기에 생겨난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시각을 조금씩 조절할 수 있다면 어떤 합의에 다다를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서로 다른 것을 무한히 뱉어내기만 하는 상황이 계속될 분이다
지식의 저주 + 지식의 벡터 방향 = 환장의 콜라보
사학: 우리가 니들 친구로 보이냐?
뭔소리여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끝없는 대화이다. 즉,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정보의 전달만은 존재할 수 없다. 화자와 청자 모두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구축된 내면세계를 통해 말을 하고 말을 듣기 때문이다.
맛있는 글!
1) 사실관계와 팩트도 중요하지만, 이를 어떻게 가치판단하고 해석할 것인가, 누군가가 어떻게 '기록을 해석'함으로서 권력을 행사하는가? 해석의 권위를 지닌 사람을 권력자라고 정의해야 하는가? 등에 대하여,
기억사회학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된 특정 영역도 있다.
2) 예술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작품에? 관객에게? 해석을 통제하는 문화 권력에게?
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것은 시대와 그 변화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며, 이는 (문명사적으로 보면) 플린 효과에 의한 지능과 공감능력의 변천과도 연관이 있다.
이는 미학(이라는 철학의 독특한) 영역의 레거시한 주제다.
3) 문화 컨텐츠에는, [과장, 풍자, 해학, 기록, 대안제시, 쐐기와 반성, 언로(언론)]이라는 사회적 역할과 기능이 있다. 이것을 문화 컨텐츠의 핵심 기능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주변적인 -어쩌다가 얻어걸리는- 것으로 볼 것인가? 에 대한 문제도 있다.
교훈을 원하면 역사를,
비판적 사고를 원하면 철학을,
그렇다면 문학의 고유한 기능은 과연 무엇인가? 도파민 디스펜서라고 하기엔 너무 고상하고, 역사와 철학과 대등하다고 하기엔 너무 천박하다.
사소한 의문인데...
문학, 역사, 철학 에서 문사철 이잖슴?
근데 왜 역사만 '역' 이 아니라 '사'에서 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