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과 다르게 발전한 동양의 대 기병 전술
서양에서의 대 기병전술은 우리가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봤던 장창의 벽이 대표적인 전술이다.
그럼 동양은 어떨까
동양에서 대 기병전에 가장 이골이 난 곳은 누가 뭐래도 중국일 것이다.
청이 들어서기 전까지 중국은 보병으로 기병을 막는 짓을 4천년을 해왔으니.
중국 고대사의 본격적인 시작인
서주가 융에 밀려 동주가 되고 춘추 전국시대가 시작될때까지 기병의 역할은 전차가 하였다.
그러나 천자국인 서주가 융에 밀리고 북방의 흉노가 강성해지자 춘추전국시대 조나라의 무령왕을 시작으로
중국에서 전차는 버려지고 전차대신 기병을 키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버져진 전차의 수레는 기병의 카운터가 되었다.
요즘 말하는 스웜전술이다
유목민 특유의 경기병+궁기병을
수레를 통해 경기병의 진입로를 막으며 궁기병보다 더 안정적으로 쏘는 쇠뇌와 활로 반격을 하는 전술로 기병을 상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전술로 한무제때 명궁으로 이름높았던 이광의 아들,
이릉은 보병 5천으로 평지에서 유목민 기병 8만과 8일을 싸워 버티었고
현재 남아있지않은 제갈량의 팔진도도 아마 이러한 모양의 전술이었을 것으로 예상되며
삼국지 극후반부의 인물인 마륭은
이 수레사용진의 아이콘으로 위말에 일어나 진초에 끝난 10년을 끈 선비족 독발수기능의 난을 승리한다.
그러나 이 전술도 시대가 지나면서
북방 이민족이 중갑기병을 키울만큼 제대로 된 규모의 보급과 장비의 군대를 양성하기 시작하자
중갑기병의 충격력과 방호력에 의해 깨지게 되는데
그게 우리가 아는 당 이후의 중국의 북방이민족 잔혹사다.
원의 태동 이후 이 잔혹사는 급속화 되었고
남송은 결국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게 되는데 이 뻘글을 쓰게 한
남송 중장보병이다.
남송은 너무나도 중국스러운 생각을 하는데
기병의 충격량을 사람의 몸으로 받아낼 생각을 한다.
중기병 돌격 그거 갑옷만 튼튼하면 버틸 수 있는거 아냐? 란 생각에
사기가 높고 건장한 병사에게 중갑을 입히는데 무게가 30키로가 넘었다.
이마저도 너무 무거워서 조정이 제한을 건것이다.
이런 갑옷을 입은 정예들을 창수 궁수 노수로 나누어 상대 중장보병 앞에 벽으로 세워 막았다.
단점은 이들의 무장(생활용품이나 식량을 제외한 무기방어구만)만 50키로가 넘어서
패퇴하는 적을 쫒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원숭환 같은 경우는 영원성 같은 평지성으로 기병을 막는 작계를 세웠고 나름 성과를 거둬 한동안이지만 누르하치의 청군을 막을 수 있었다.
대숭환
원숭환은 평지에서도 청나라 까부순 양반이긴 한데
명나라 : ?대포 쏘면 되는데?
청나라 : 맞아 맞아.
ㅇㅇ그래서 명부터는 화기의 등장으로 그냥 안적었...
역시 답은 화력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