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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iciou.. | 25/09/26 22:25 | 추천 35 | 조회 74

[유머] 공기업 취업 기념 일대기 +74 [8]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72442775

공기업 취업 기념 일대기


드디어 지방공기업에 입사했다


주작, 농담 아니고 진짜로


나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계속 꿈꿔왔는데

객관적으로 보자면 너무 많은 댓가를 주고 얻은 것 같다


재수해서 인서울 4년제 대학을 입학하고

군대도 가고

그렇게 26살까지 대학 생활 후


2020년에 대학 졸업하고


졸업 직후 까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공기업 가고 싶다"

이런 생각만 하면서 뭐가 필요한지 알아보지도 않았다


2020년 1분기까지 대졸 백수로 놀기만 하다가

2020년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공기업 가기 위해 필요한 전기기사 필기를 공부해서

그 해 2차 필기에 떨어졌다...


공부를 대충 했으니까

원래 필기는 전공자가 공부 조금만 하면 붙는 거 맞다


그 해 3분기부터 독서실 잡고 공부를 좀 각잡고 해서

3차 필기엔 붙었다


근데 난관은 실기였다

실기는 필기의 공부량 만으론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허들을 자랑했다


전자공학과 출신이라도

내 동창 중 공부 잘하는 녀석도 한 번은 떨어진 게 전기기사 실기였다


당연히 2020년 3차 실기 떨어지고

2021년에 서울 강남에 있는 좋소에 들어갔다


승강기 설계 제조 회사였는데

정말 전형적인 좋소였다


입사할 때 인감증명서를 요구했고

(다행히 인감증명서는 유효기한이 있고 회사는 그걸 이상한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주제에 끼니값도 안 줘서 비싼 밥값을 내면서 다녀야 했다


선임의 잦은 외근과 고된 업무를 본 나는 같이 들어온 동기에게 퇴사를 먼저 예고하고

출근 4일째 직후 금요일 아침에 전화로 퇴사 통보를 했다


당연히 4일만 나왔으니 급여는 없었다


그 후 2021년 내내 취준을 빙자해서 거의 놀다시피 했다

전기기사 실기를 준비했지만

합격률을 찾아보면 알다시피 정말 절박하게 공부했으면 그 해에 합격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 못 했다는 건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021년 3분기에 서울을 나와서

인천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당연히 집안에선 취직하라고 성화를 내서

2022년초에 인천에 있는 팬 제조 회사에 취직했다

당연히 좋소였다


대리 중 대빵이 한 명 있었는데 완전 군기반장이었다

해병대 출신이랬나


회로랑 기계(팬과 팬이 들어가는 틀)가 나눠져 있는데

문제는 그 대빵이 다른 대리를 미친듯이 갈구는 거였다


갈굼 당하는 대리도 5년차였고

나한테는 딱히 일을 못한다는 인상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옆에서 보면 굉장히 몰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대리 말로는 "여기서 뼈를 묻겠습니다"라고 했지만


표정은 많이 불안해보였다


그게 내 미래일 것 같았다


그것도 있었지만

그 군기반장이 나와 입사동기를 불러서

"말할 때는 다나까를 쓰는 게 좋다"

"마주칠 일이 없어도 직급이 높은 사람한테 먼저 인사해라"

등등 말하면서 군기를 잡은 적도 있었다


거기 연구소장이 상사였는데

군기반장이 했던 모든 일을 얘기한 다음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퇴사하는 날 아침에 출근하라고 하더라


그냥 "~사원이 2개월 열심히 일하고 퇴사한다"

이런 식으로 말하고 박수 받고 퇴사했다


멕이는 건가 싶고 좀 쪽팔렸지만 그냥 별 수 없이 그렇게 퇴사했다

급여는 제대로 다 나오더라


그렇게 또 백수로 돌아와서 2022년을 보냈다

그 해 내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받았다


기사 자격증 공부한 사람들은 눈치챘겠지만

2022년 3회차가 남은 기간 중 마지막 기회의 시험이었다

여기서 탈락하면 그냥... 까놓고 말하자면 자/살 할 수도 있었다


더 살아봤자 뭐하겠냐

그냥 밥 버러지 인생의 연속이지


근데 이게 역대 전기기사 실기 합격률 2위를 자랑하는 물시험이었다

그래서 합격했다

공기업 취업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사실 가산점 조금 더 받으려고 2년 날린 셈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당연히 바로 공기업 취업이 된 건 아니고

2023년이 되고 집안의 압박을 받으니

또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그나마 기사 자격증 갖고 현장대리인으로 입사한 것도 있고

인천공항 협력업체라서 야근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좀 한가했고 현장 사무실 사람들도 착하고 업무가 격하지 않은 덕분에

나름 1년을 채웠다


왜 1년을 채우고 나왔느냐


2023년까진 현장 사무실이 잘 유지되다가

2024년 되자마자 1분기 지나기 전에 현장 소장이 본사의 정치질로 교체되면서

내가 현장 소장의 모든 일을 떠맡고 공사가 거의 다 망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케이블을 어떻게 설치했는지 모르겠지만

기기끼리 통신은 안되고 기기 자체도 제대로 작동하는 게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새로 온 소장은 정말 뭘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떠넘기기의 달인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준공 검사도 다가오고 관련 문서를 많이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데

신입인 내가 현장 소장 일을 떠맡고 있고

이러다가 뭔가 큰일날 것 같아서

퇴사를 하기로 했다


이런 것 말고도

회식비 30만원 가량을 나한테 떠넘기거나 했던 일도 있긴 했지만

(물론 퇴사할 때 본사 닥달해서 회식비는 다 돌려받았다. 퇴직금도 받았다.)


그렇게 또 백수로 돌아와서 2024년 2분기 까지는 놀다가

2024년 3분기에 드디어 제대로 공기업 채용을 대비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필기를 붙어서

처음으로 면접 학원을 가서 면접 대비를 했다


근데 최종 불합격을 했다

그리고 예비 번호를 받았다


예비번호의 기한은 1년


그렇게 올해 2분기까지 기다리다가 안되면 다른 곳을 알아보려고 했다

올해 3분기에 희망을 거의 다 잃어버리고 다른 곳을 지원했으나

계속 낙방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라는 말을 소설책에서 봤는데


저번 달까지 내가 거의 그런 상태였다


정확히는 이번 달 초까지

그동안 "포기하지 말고 살아가자"

"살아남는 게 승리"

라는 말을 모토로 삼고 살아있으려고 했다


알고 있었다

공기업 예비번호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가까운 순번이라고 해도 추가 합격은 기다리지 않는 게 좋다


그래도 기다렸던 내가 점점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러다 결국 이번 달 초에 추가 합격 전화가 왔다


기한 1년 중 10개월 만에 온 것이다


만약 추가 합격하면

눈물이 나올까 생각했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오진 않더라


오래 걸리긴 했다

대학 졸업한 지 5년 만에 원하는 회사에 합격한 거니까


나 같은 인생도 있으니까


나쁜 생각이 들어도

거기에 잠식 당하지 말고

절대 기죽지 말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지도 말고


원하는 기업이 있다면

공부는 당연히 해야 하고 건강 관리는 최소한이라도 하고 있어라


청년 자/살율이 높다


나도 거기에 기여할 뻔했다


그래도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이 죽음의 그림자는 삶에 계속 드리울 수 있다


그래도 살아가려 노력해야 한다



살아있는 게 최고로 좋은 거다


각자 원하는 걸 꼭 이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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