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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 25/08/15 11:32 | 추천 8 | 조회 20

[유머] 옛날뉴스) 광복의 노병,광복절에 숨지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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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뉴스) 광복의 노병,광복절에 숨지다


옛날뉴스) 광복의 노병,광복절에 숨지다_1.png






























광복(光復)의 노병(老兵)」,광복절(光復節)에 숨지다


전(前) 공군참모총장(空軍?謀?長) 최용덕(崔用德)장군 어제 영면(永眠)

"군복(軍服)입혀 묻어달라"유언(遺言)

전우(?友)들이 집지어준 청빈(淸貧)에

구두까지 벗어주는 애타심(愛他心)

쓸쓸한 말년(末年)‥‥유산(遺?)은 단돈 240원

독립투사이며,우리 공군창설에 공이 큰 최용덕(崔用?)장군이 광복절인 15일 오후 2시45분 숙환인 고혈압으로 별세했다.향년 72세.제2대공군참모총장,체신부장관,주중(현 대만)대사등을 역임하면서도 청빈만을 자랑으로 살아온 노애국투사의 최후는 옛 전우들이 지어준 21평짜리 자그마한 집(서울영등포구대방동(永登浦?大方洞)461의5)에서 너무나 쓸쓸했다.

장군의 임종에는 3일전 위독소식을 듣고 대만에서 날아온 중국인부인호용국((胡用?)·67)여사와 외할머니에게 업혀온 생후 몇 달안된 외손녀,그리고 시인 이은상(李殷相)씨가 지켰을 뿐이었다.

15일 오후 장군의 운명을 전해들은 공군 참모총장 김성룡(金成?)대장,재향군인회섭외국장 박제형(朴?衡)씨,광복회 부회장 황용암(??岩)씨,공군106단장 권대유(?大有)준장등이 문상왔으나 오후 5시까지 빈소도 마련하지 못하고 친지에게 연락하기에 바빴다.외동딸 최보옥(崔?玉)여사는 대만에서 산후조리가 나빠 돌아오지 못했다.

최장군은 이날 아침 최후를 예감했음인지 부인에게『내가 축으면 한국군복을 입혀 묻어달라.꼭 한번 우리나라에서 만든 비행기를 타보는것이 소원이었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한일합방후 중국으로 건너간 최장군은 1922년 중국공군 군관학교를 졸업함과동시 인연을맺고 중국공군기지사령관(대령(大領))을 역임했으며,장개석((?介石)총통과는 각별한 사이였다.

해방후에는 광복군 참모처장으로 중국내에 산재한 동포들을 규합,귀국길을 도왔으며 국방차관,공군참모총장(53년),체신부장관(60년),주중(駐中)대사(61년)등을 역임하면서 태극무공훈장을받기까지 했다.그러나 최장군의 생활은 청빈과남을 돕는일로 이어져왔다.최장군과 가장 교분이 두텁던 이은상씨는『최장군은 돈과 명예를 초월한 전형적인 군인이었다』고 말했다.

15일 오후 그가 운명한 직후 젖을 달라고 보채는 외손녀의 분유를 사려고 그의 고의적삼을 뒤졌을때 주머니에선 단돈2백40원이 나왔을 뿐이었다.

마침 문상왔던 최장군의 중국공군동료인 권기옥((?基玉)·69)여사는 이돈이 고인이 남긴 것의 전부라고 일러주었다.최장군이 가난했던 이유는 청빈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그는 항상 남을 돕기를 좋아했으며,특히 중국시절에 사귄 친지에겐 신고있던 구두까지 벗어준일이 있다는 것이다.고인이 운명한 집도 그가 마련한 집이 아니다.

갈현동7의144 셋방에 살고있는 그의 딱한처지를 돕기위해 김정렬(金貞烈),장성환(張盛煥)씨 그리고 공군의 보라매회 장덕창(張?昌)회원들이 1백만원을 모아 작년크리스마스 때 대지 1백20평,건평21평의 이집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화려한 관직에서 떠난 최장군은 언제나 대만에있는 딸 생각만을 하며 조용히 지내왔다.15일 저녁때까지 유족들은 장례절차등을 결정짓지 못하고 있는데, 다만 불교식으로 조용히 하고 싶다는것이 미망인의 의견이었다


1969.8.16 조선일보 조간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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