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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chi.. | 25/08/09 15:10 | 추천 14 | 조회 47

[유머] 주변에 이런 환자가 있다면 말려주세요. 7탄 +47 [8]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71839360

주변에 이런 환자가 있다면 말려주세요. 7탄

안녕하십니까. 서울의 한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 중인 블루칩입니다.
굳이 이런 글을 유머 탭에 올리는 이유는, 적당한 게시판이 없는 것도 있지만 유머 탭은 남녀노소 모든 계층이 즐겨 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종종 시간이 난다면 이 탭에 제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놀라운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제목은 <대장내시경 준비 좀 잘할걸...>입니다.

마지막 글을 쓰고 조금 바쁜 일이 생겨 이제야 글을 씁니다. 지난 글에서 약속한 대로 제 첫 대장내시경 경험담을 풀어보겠습니다.

20대 남성으로 부모님과 함께 방문한 병원에서 생애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진행하였습니다. 건강검진 항목에는 대장내시경도 있었고, 해당 병원에서 받은 대장내시경 준비 설명문을 읽고 그대로 준비했습니다.
어두운 방에 들어가 내시경을 시작했던 기억이 있었음에도, 눈을 뜬 곳은 커튼이 쳐진 이동형 침대 위였습니다. 정신이 들었기에 저는
“간호사 선생님, 저 깼는데 이제 가도 될까요?”
라고 물어보았고, 간호사 선생님은 커튼을 걷으며 저에게 조금은 짜증이 섞인 말투로
“환자분... 지금 그 말을 몇 번째 하고 계신지 아세요? 아직 시간이 덜 지났으니까 좀 누워계세요.”
라고 말하고는 그대로 휙 나가버렸습니다.

어렸던 저는 너무 그 상황이 부끄러워서 그냥 시간이 되면 간호사가 다시 오겠거니 하고 천장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십여 분 후 간호사가 다시 들어와
“환자분, 정신 좀 드시면 이제 일어나서 의사 선생님께 가보세요. 할 이야기가 있다세요.”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일단 의대생이었기도 하고, 의사가 따로 불러서 할 이야기라니요.

선생님을 만나니 선생님께서 저를 보시고는 한숨을 쉬십니다.
“학생, 의대생이라고 했나요? 후... 장 정결도가 너무 안 좋기도 했고, 너무 많이 움직여서 저희가 똑바로 보기도 힘들었어요. 하지만 저기 용종이 확실히 보이는 부분이 있네요. 저희는 더 이상 힘들 것 같으니 학생 학교 가서 교수님께 부탁드려보세요. 제가 소견서는 써드릴게요.”

지금은 살도 많이 찐 아저씨가 됐지만, 20대에는 나름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고, 술도 많이 하지 않았기에 더욱 겁이 났습니다. 용종이라니, 용종은 분명 전암성 병변일 수 있다고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가... 저는 그렇게 찝찝한 기분으로 소견서를 들고 제가 다니던 학교의 병원으로 갔습니다.

당시 방학이었고, 일단 다짜고짜 내과 외래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외래 간호사 선생님께 학생증을 보여드리며 교수님을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외래가 다 끝나고 교수님께서 나오셨을 때, 교수님께 지난 이야기를 가볍게 말씀드렸습니다. 교수님은 웃으시며 외래 간호실에 저를 데리고 가셔서는 대장내시경 예약현황 장부(당시만 해도 종이 장부를 썼습니다.)를 열어 하나둘 보시더니, 개강 직전의 날짜에 제 이름을 넣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너 딱 약만 먹었지? 그래, 학생이 뭘 알겠니. 이번에 약(장 정결제) 받으면 약은 당연히 시간 맞춰서 다 먹고, 그 이후로도 물을 엄청 마셔. 물을 많이 마실수록 좋아. 네가 마실 수 있는 최대한의 물을 마셔봐. 그리고 식사 조심하는 건 설명서에 적혀 있는 게 최소 요건이지, 최대 요건은 아니다. 그냥 1주일간 씨앗, 깨 있는 거 먹을 생각 말고, 거기 하루 전에도 먹을 수 있는 음식 위주로 먹어라. 그래야 한 번에 된다.”

그렇게 교수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대장내시경을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다시 돌아온 대장내시경 당일. 교수님께 다시 감사 인사를 드리고 베드에 누웠습니다. 눈을 감았다가 뜨니 또 끝이 났더군요. 하지만 이번엔 내시경을 하던 방에서 눈이 떠졌습니다. 왜 그랬는진 아직도 모르겠지만, 왠지 교수님께 인사를 너무 하고 싶다는 마음에 비몽사몽으로
“으... 어... 교슈우님 감사합니다아. 어... 공부 열시미히 하겠습니다아.”
라며 혀 꼬부라진 소리로 외쳤습니다.

주변 간호사 선생님들이 다 웃으시고, 교수님도 웃으시고, 보호자 자격으로 갔던 친구도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교수님께서는 저를 볼 때마다
“열심히 하고 있니!”
하고 물어보셨습니다.

이게 말로 해야 웃긴데 글로 전하니 뭔가 재미가 없군요.
오늘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장내시경 준비입니다. 저도 직접 대장내시경을 잡고 의사로서 시술해보기 전까진 장 정결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습니다. 장 정결이 안 되면 사실 돈을 버리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꼭 기억합시다.
1. 가능하면 1주일 전부터 씨앗 있는 음식은 먹지 맙시다. 씨앗 있는 음식은 생각보다 장에 잘 붙어 있습니다.
2. 장 정결제를 먹은 후에 추가적으로 물을 많이 마셔줍시다.

다음에는 다시 제가 경험한 환자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3줄 요약
20대 남성이 대장내시경을 시행하였으나, 장 정결이 잘 되어 있지 않아 실패하였습니다.
다시 시도한 대장내시경에서 약에 취해 헛소리를 했습니다.
씨앗 금지, 추가 물 섭취하여 장 정결을 잘 해 봅시다.


6탄 링크는 아래입니다. 혹시 지난번에 못 보신 분은 아래에서 봐주세요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71508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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