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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로미 | 26/10/09 08:24 | 추천 0 | 조회 785

한글은 정말 과학적인 글자일까요? +41 [30]

웃긴대학 원문링크 https://m.humoruniv.com/board/read.html?table=pds&number=1428106



3줄요약

한글은 다양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과학적이고 확장성 높은 문자였다.
하지만 후대에 편의성과 통일성을 중시하면서 표기 규칙이 크게 제한되었고,
그 과정에서 한글이 원래 지녔던 표현력과 잠재력이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요즘 역사음운론을 공부하면서 『동국정운』을 읽다 보니,
현대 한글 표기에 대해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생겼어요.

애초에 훈민정음은 고작 조선어만 적기 위해 만들어진 문자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동국정운』을 보면 중국 한자음을 상당히 세밀하게 분석하고,
당시 현실 한국어에서는 잘 구별되지 않던 음운적 차이까지
한글로 표현하려 했다는 점이 꽤 흥미롭습니다.

물론 흔히 말하듯
“한글로 전 세계 모든 언어의 소리를 완벽하게 적을 수 있었다”
라고까지 말하는 건 조금 과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옛한글까지 포함하면
현대 한글보다 사용할 수 있는 자모와 음가의 범위가 훨씬 넓었고,
무엇보다 새로운 소리를 분석해서 문자 체계 안에 표현하려 했던 확장성이
굉장히 높은 문자였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현대 한글을 기본 24자 체계로 정리한 것 자체는 충분히 이해해요.
문자는 결국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쉽고 편하게 써야 하니까요.
그런데 제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건 그다음입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첫 번째 원칙부터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자모만으로 적는다.”
라고 정해 놓고 있습니다.

또 파열음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등,
외국어에 존재하는 여러 음운적 차이를
한국어의 기존 음운 체계 안으로 압축해서 표기합니다.

저도 한글을 IPA처럼 만들자는 건 아니고,
지금 쓰는 맞춤법을 전부 뜯어고치자는 것도 아니에요.
일상적인 외래어 표기는 지금처럼 간단하게 유지하더라도,
조금 더 세밀하게 적을 수 있는 확장 표기 체계 정도는
따로 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1. 복자음과 음절 표기
원래 옛 한국어에서도 지금보다 다양한 자음 결합과 종성 표기가 가능했어요.
현대 한국어에서는 받침의 실제 발음이 크게 단순화되어 있죠.
받침의 ㅈ/ㅊ/ㅌ/ㄷ/ㅅ/ㅆ/ㅎ 는 [ㄷ] 으로,
ㅂ/ㅍ은 [ㅂ], ㄱ/ㅋ/ㄲ은 [ㄱ] 으로 실현됩니다.

외국어를 한글로 옮길 때도 이런 한국어의 음절 구조에 맞추다 보니
원래 없던 모음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영어 Christmas는 [krɪs] 와 [məs] 두 음절의 단어입니다.
그런데 한글에서는 자음군을 단독으로 적을 수 없으니
원래 음절에는 없던 ‘ㅡ’를 넣어 ‘크리스마스’라고 다섯 음절로 적게 되고,
이것을 외국인이 들으면 Ku Ri Su Ma Su 라고 전혀 다르게 들리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한국어 화자가 읽기 쉽게 만들어 주는 장점도 있어요.
하지만 외국어를 배우는 입장에서는 원래 단어와 한글 발음이 달라지고,
그 표기에 익숙해질수록 실제 발음을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필요할 때만이라도 자음군이나 종성의 차이를
조금 더 직접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2. /f/, /v/, /z/, /th/ 정도는 구별할 수 없을까
개인적으로는 최소한 /f/, /v/, /z/, /θ/, /ð/처럼
세계 여러 언어에서 굉장히 흔하게 등장하는 음소 정도는
별도로 구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지금 체계에서는 F와 P, V와 B처럼 원어에서는
분명히 다른 음소가 한글 표기에서는 같은 계열로 합쳐지는 경우가 생기니까요.
물론 한국어에 없는 음을 한국어 화자가 정확하게 발음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문자가 본질적으로 표현할 능력이 없는 것과
표기 규칙에서 굳이 표현하지 않기로 한 것은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꼭 일상생활에서 모두가 새로운 글자를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표기법 정도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어 표기
그리고 개인적으로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
가장 의문이 많이 드는 부분 중 하나가 일본어입니다.

쵸로미가 일본 여행지와 일본 문화를 소개하면서
많은 고민이 드는 부분이 고유명사입니다.

'마츠모토'라고 써야 하나 '마쓰모토'라고 써야 하나,
'오오타니'라고 써야 하나, '오타니'라고 써야 하나,
'치바'라고 써야 하나, '지바'라고 써야 하나,

공식 외래어 표기를 따를지,
실제 일본어 발음에 가깝게 적을지,
이미 한국에서 굳어진 관용 표기를 따를지
계속 고민하게 되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3. 무성음의 유성음화

현행 규정에서는 일본어의 무성 파열음을 어두에서는 평음으로 적습니다.
그래서 カ행은 단어 첫머리에서 ㅋ 계열이 아니라 ㄱ 계열로,
タ행 일부 역시 ㅌ 계열이 아니라 ㄷ 계열로 적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일본어 어두 무성음의 기식이 한국어의 거센소리보다 약하고,
한국어의 ㄱ/ㄷ 같은 평음 역시 어두에서는 무성으로 실현되기 때문에
음성적으로 더 가깝다는 취지로 설명합니다.

여기까지는 음성학적으로 어떤 논리인지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건 전사 체계에서
음성적인 유사성만을 어디까지 우선해야 하느냐는 부분이에요.

일본어에는 カ /ka/와 ガ /ga/가 서로 다른 음운으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현행 표기에서는 단어 첫머리의 カ와 ガ가 모두 ㄱ 계열 표기로 합쳐집니다.

즉 원어에서는 의미 있는 대립인데,
한국어로 옮기는 순간 그 정보가 사라질 수 있는 거죠.
이 문제를 보여 주는 유명한 사례가
교토의 금각사(金閣寺, きんかくじ)와 은각사(銀閣寺, ぎんかくじ)입니다.
(완전히 다른 뜻인데도 둘다 긴카쿠지라 발음)

이런 문제는 꽤 오래전부터 학계에서도 지적되어 왔습니다.
1996년 『새국어생활』에 실린 「현행 일본어 표기법과 나의 의견」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들어 어두 무성음과 유성음의 한글 표기가 합쳐지는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한국인이 일본어 カ를 들으면 ‘가’에 조금 더 가깝게 느낀다.”
정도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전사 체계라면 원어에 실제로 존재하는 의미 있는 음운 대립을 굳이 없애야 할까?

저는 이 부분이 궁금합니다.
더 재미있는 건 한국어 화자가 ‘카’라고 발음한다고
해서 일본인이 그것을 ガ로 알아듣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에요.

한국어의 ‘가’도 일본인에게는 カ 로 들릴 수 있고, ‘카’ 역시 カ 로 인식됩니다.
그렇다면 カ와 ガ의 표기를 모두 ㄱ 계열로 합쳐서 얻는 이점이 얼마나 큰지 의문이 듭니다.
음성학적인 근거가 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그로 인해 원어의 음운 대립이 사라지는 손실도 같이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4. 장음, 두음법칙, 단모음화 표기
한국의 일본어 표기법에서는
“장모음은 따로 표기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東京(とうきょう)는 '토오쿄오'가 아닌 ‘도쿄’가 됩니다.

일본어에서는 모음의 길이가 단순한 억양 차이가 아니라
단어를 구별하는 음운적인 기능을 합니다.

그런데 유성음과 장음을 표기하지 않으면
どきょう
どうきょ
どうきょう
どきょ
ときょう
とうきょ
ときょ
모두 한글표기로 '도쿄'입니다.

원어에 존재하는 정보 일부를 표기 단계에서 원칙적으로 포기하는 셈이죠.

물론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관용도 인정됩니다.
예를 들어 え단 뒤의 い를 ‘게이’, ‘세이’처럼 살려 적는 경우도 있고,
인명이나 상표명처럼 이미 널리 굳어진 표기는 관용적으로 인정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규칙 전체가 완전히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래서 조금 더 복잡하게 느껴져요.

예를 들어 '치이카와' 같은 이름도 규정을 적용하면 '지카와’가 됩니다.
ピカチュ '피카츄'역시 비카추가 되고, 카구야히메는 가구야히메가 됩니다.

결국 현실에서는 상표명, 이미 굳어진 표기, 관용 표기를 다시 별도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규칙이 현실의 언어 사용을 자연스럽게 설명한다기보다,
현실에서 계속 예외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처럼 보여요.

5. 이런 문제 제기는 학계에서도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일본어의 한글 표기 문제는 오래전부터 학술적으로도 논의되어 왔어요.
김용각은 2008년 「일본어 한글표기의 문제점 고찰 및 개선안」에서
현행 표기법을 발음 교육의 측면에서도 검토하고 개선 방향을 논의했고,
2024년 한원형, 조혜숙의 「일본어 仮名의 한글 표기에 관하여」에서는
カ행과 タ행의 무성음은 위치와 관계없이 ㅋ/ㅌ 계열로,
ガ행과 ダ행은 ㄱ/ㄷ 계열로 일관되게 구별하는 방식도 개선안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현재 규칙이 이렇게 정해져 있으니까 이것이 가장 과학적인 표기다.”
라고 단정하기에는 생각해 볼 부분이 꽤 많아 보입니다.

아쉬움의 근본은 비슷합니다.

『동국정운』을 보고 있으면 15세기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말에 없는 소리를 어떻게 분석하고, 어떻게 문자로 구별해서 적을 것인가?”
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세계 각국의 언어와 사람 이름을 매일 접하는 21세기에는 오히려
“우리말에 없는 구별이니까 그냥 우리에게 편하게 같은 글자로 적자.”
라는 방향으로 가는 게 재미있기도 하지만 아쉽기도 합니다.

물론 문자 생활의 편리함도 중요하고,
표기를 통일하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다만 표기를 편리하게 만드는 것과 원래
존재하던 정보 자체를 없애는 것은 좀 다른 것 같아요.

15세기의 한글이 우리말에 없는 외국의 소리를 어떻게 적을지 고민했던 문자라면,
세계 여러 언어가 매일 섞여 들어오는 지금의 한글도
외래어를 조금 더 잘 표현할 방법을 고민해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글이 못 적어서라기보다,
어쩌면 우리가 적지 않기로 정해 놓은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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