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됐으면 안됐을 캡콤 출신 능력자들
미카미 신지.
바이오하자드의 아버지, 서바이벌 호러 장르의 개척자
게임 깎는 장인으로써는 일류. 후배양성도 잘함.
다만 비지니스를 감각과 정치감각은 유감스러움.
본인은 능력이 되기 때문에 어디서 부르든 부르겠지만,
휘하 사람들도 다 그럴까?
결국 캡콤 퇴사 이후에는 납기일은 납기일대로 못 지켜서 투자자들에게 미운털 박히고,
본인이 차린 회사에서조차 쫓겨날 정도로 괴멸적인 사회생활 스킬을 보여줌.
다만 그가 일궈낸 후배들은 나름 한 기량씩 한다는 모양.
그가 키워낸 인재들은 최종적으로
크래프톤과 시프트업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카미야 히데키
데빌 메이 크라이의 아버지, 스타일리쉬 액션게임의 선구자
미카미 신지 제자 1호.
나쁜 의미로 미카미 신지의 나쁜 점과 좋은점을 극대화 해서 흡수함.
게임은 잘 만들지만 역시 비지니스 감각은 제로.
마찬가지로 본인이 창립멤버였던 회사에서도 대립해서 쫓겨나다시피 퇴사.
다만 이쪽도 실력은 진짜여서 만든 게임들의 평가는 좋은편.
역설적으로 그가 아직도 창작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건 닌텐도 덕분이 큰데,
이는 위유 시절 맺었던 닌텐도와의 의리를 끝까지 지킨 덕이기도 함.
이나후네 케이지
록맨을 캡콤의 아이콘 까지 끌어올린 프로듀서,
전 캡콤 부사장급 임원
천재적인 비지니스 촉과 말빨을 가졌(었)던 인물.
퇴사후 행보.
특히 마이티 넘버 나인의 대실패 이후의 행적 덕에 평가절하 당하기는 하지만,
한창 촉이 살아 있을 시절의 능력은 진짜였음.
캡콤의 암흑기 전의 성공가도에는 그의 판단이 크게 주효했던 것도 큼.
캡콤 재직 시절을 빼고 보더라도,
비타의 명작 소울새크리파이스와 록맨의 정신적 후속작 건볼트의 성공은
그의 입김과 촉이 크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암흑기 당시 와이너리 사업 한다고 욕받이가 됐던
츠카모토 겐조 회장은 사실 진짜로 게임엔 무지해서
자신은 돈의 흐름만 총괄하지
나머지 게임의 개발이나 사업 부분은 개발진(전문가)에게 믿고 맡기는 주의였음.
우리가 기억하는 캡콤의 암흑기 시절,
검증되지 않은 서양 스튜디오에 외주 주거나,
DLC로 파편화 해서 판매하던 그 시절의 사업은 사실
경쟁자들 다 쳐내고 폭주하던 이나후네의 작품이다.
오히려 오너 일가는 거기에 간섭해서 브레이크를 걸었던 쪽.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암흑기 대표적인 퇴사자 3인방은 제각각의 독선적인 면모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저중 정말로 최악의 한 명을 꼽자면 역시 이나후네 케이지가 아니었을까?
중간 지휘관으로써는 일류였지만 권한을 다 쥐어주니 무능도 이런 무능이 없었다.
글마 빼면 나머진 그나마 어찌 먹고는 산다고. 전성기 폼은 아니지만.







ㅠㅠ
하긴 무다구치 소장도 장군 안하고 대민관련 일만 했으면 그런꼴 안 앗을듯
사실 켄조 회장이 딱히 게임에 무지했던 거도 아님.
파이널 파이트 만들 때 제작진에게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 보여주면서
이런 느낌으로 만들어봐라 한거도 켄조고
계란을 한군데 모으지 않는다고 콘솔 전쟁 시기에 분산시킨 거도 켄조였다고 함.
하지만 게임 파트를 믿을 사람(오카모토 요시키)에게 맡겼던 건 맞는데,
오카모토 퇴사 후에는 본인도 와이너리 등 뒷수습 하느라
캡콤 내부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건 맞긴 함.
이나후네 성과금도 지 혼자 다 처먹는 걸로 유명했지
그래서 별명이 맥스군이었다죠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 되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