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정난'까지는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가 강했던 이유
교과서에도 나오는 인사전횡 황표정사도 영향을 미쳤지만
(황표정사도 문제였지만 당시 조선은 인사권자가 자기 친척을 추천하지 못하게 상피제를 운영하는데
김종서와 황보인은 서로가 서로의 친인척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이를 회피함
이러니까 1차로 승진길이 막힌 문관들이 빡침)
"김종서와 황보인이 안평대군과 짜고 역모를 준비했다."
는 수양대군의 주장이 먹혔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황보인이 궁궐 중건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금군을 계속 역군으로 동원했기 때문임
그리고 궁궐 공사의 최종 책임자가 바로 황보인이었음
당장 태종이 1차 왕자의 난 때 역군을 사병으로 동원한 전례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임금인 단종이 이제 금군을 내보내라고 말했는데 끝까지 거부한 모습은
정말로 역모에 필요한 군사가 필요해서 그랬나? 라고 의심을 사기 충분했지
안 그래도 인사적체로 불만을 쌓인 상황이었는데.
ㄱ래서 김종서 / 황보인 숙청까지는 그럴 수 있다는 분위기가 의외로 강했음





부모를 뒷방노인으로 만들었든 형제를 죽였든 조카를 죽였든 아예 부모자식끼리 골육상쟁을 펼치든 권력다툼의 과정으로 벌어진 일에 이래저래 "이건 패륜이 아니지만 이건 패륜이야"하는 것도 웃기고 먼 미래인인 현대의 사람들에게 그렇게 와닿는 부분도 아니고, 결국 그렇게 쥔 권력을 얼마나 기깔나게 썼느냐로 평가가 갈리기 마련.
한명회 아이피 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