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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상씨.. | 19/03/25 18:46 | 추천 36

[약스압]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관계를 ARABOZA +680 [8]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1084601519

동남아시아의 복잡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호세 리살'이라는 필리핀의 독립운동가이다.

리살이 왜 중요한 인물인가 하면 말레이 인종에 의한 민족자결을 사상으로 정립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말레이 인종이란 우리가 흔히 똥남아라 부르는 그 인종인데,

리살이 살아있었을 때에는 말레이 인종이라고 하면 미국이나 스페인, 네덜란드 세력, 그리고 일본제국으로부터 '원주민'을 구분할 수 있었으니 나름 민족자결의 수단이 될 수 있었지만

막상 독립을 하게 되니까 말레이 인종 밑의 수많은 민족들이 서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큰 혼란이 닥치게 된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동남아시아의 각 국가들은 독립을 달성한다.

50년대가 되자 각 지역에서는 식민지 시대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으로 민족주의가 큰 호응을 얻기 시작한다.

중동에서 아랍 민족주의,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 민족주의가 일어난 것처럼 동남아시아에서는 말레이 민족주의가 탄력을 얻기 시작한다.

알 아사드(시리아), 이디 아민(우간다), 사다트(이집트), 카다피(리비아)... 지금 보면 (사다트 빼고) 존니 노답인 면면들이지만 그래도 당시의 순진한 대학생들은 얘들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결국 뿔뿔히 흩어진 아랍민족주의처럼 말레이 민족주의도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말레이 민족주의의 헤게모니를 서로 잡겠다고 두 나라의 지도자들이 경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필리핀의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였다.

한편 1957년, 영국으로부터 말레이시아가 독립하게 되자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즉, 말레이시아를 끌어들인 방대한 말레이 민족주의를 현실화한 초거대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를 마필린도(Maphilindo)라고 부른다.

그리고 마카파갈과 수카르노는 서로 자신이 말레이 민족주의의 주도권을 잡고 말레이시아를 끌어들이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영국과 말레이시아에게는 다른 꿍궁이가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영국뽕에 취해있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을 믿지 않았다. 그냥 인종만 같다 뿐이지 문화도 제도도 언어도 달랐다. 심지어 같은 이슬람교를 믿는다지만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교 율법이 적용되는 정도도 달랐다. 두 나라는 정치적으로 하도 오래 분리되어 동질감을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수카르노는 말레이 민족주의를 내세우지만 인도네시아 자체가 워낙 다민족 국가라서 애초에 말레이 민족주의가 성립될 수 없었다. 실제로 수카르노의 군사정권은 강력한 철권통치로 소수민족들을 억누르고 있었다.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던 일본제국의 침략을 받은 적이 있는 말레이시아에게는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말레이시아 총리 퉁크 라만(Tunku Rahman)은 영국의 지원을 받아 싱가폴을 포함한 말레이 반도 및 보르네오섬을 합친 말레이시아 연방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 당시 말레이시아는 영연방의 일부였고 아직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게 정식 국가로 인정되지 않았다.

당시는 냉전 시대였는데,

필리핀은 당연히 미국 응디에 매달려 가고

말레이시아는 영국 응디에 매달렸는데

인도네시아는 미국과 소련 양쪽과 친하게 지내겠다는 노선을 선택하고 있었다.

상당한 외교 식견이 있었던 수카르노는 미국과 소련 양쪽과 친하게 지내면서 마필린도의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었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합법적 정당으로 활동하던 국가였다.

냉전 시대이다 보니 아무리 인종이 같아도 세 나라는 서로를 믿을 수가 없었다.

마필린도 협상은 난항에 난항을 거듭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 세력을 키워가던 좌익 게릴라가 결국 사고를 쳤다.

좌익 게릴라는 브루나이 왕실을 뒤집어 엎겠다며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1962년 발생한 브루나이 무장봉기이다.

깜짝 놀란 브루나이 왕가는 바로 영국군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영국군에 의해 좌익 반란군은 진압 되었다.

이 일에 존나게 빡친 사람이 바로 수카르노였다.

공산주의자들이 진압당해서 빡친 건 아니었고 (수카르노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음)

수카르노가 빡친 이유는 말레이 민족의 일에 영국이 개입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말레이 정부를 영국의 꼭두각시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도 수카르노가 공산주의자가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미국 응디에 매달리는 필리핀이 마필란도 구상에서 발을 빼면서 서서히 수카르노의 말레이 민족주의 구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를 믿지 않았던 라만 총리는 수카르노의 통수를 쳤다.

1963년, 그냥 영국의 지원을 받아 말레이시아 연방(Federation of Malaya)을 선포해버린 것이다.

말레이시아 연방의 탄생과 함께 마필란도 구상은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수카르노는 빡쳤다.

하지만 영국 상대로 전면전을 벌일 용기까지는 없던 수카르노는 보르네오섬에 무장게릴라들을 파견했다.

전면전을 벌인 건 아니지만 의도적으로 말레이시아를 테러한 것이다.

그리고 말레이시아군, 영연방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수카르노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 게릴라의 활동은 1965년까지 계속 이어진다.

말레이시아와의 대결 상태가 지속되면서 수카르노는 기존의 외교 감각을 잃었고

공산주의 국가들과 친하게 지내며 미국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특히 수카르노는 막대한 군비 지원을 해주는 중공과 친하게 지냈다.

중공은 수카르노와 친하게 지내는 한편 배후에서는 인도네시아 공산당을 지원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수카르노의 묵인 아래 군부에서 세력을 키워나갔다.

1965년 9월30일,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그들이 '기회주의자'라고 판단한 수카르노를 몰아내고 진짜 공산정권을 세우겠다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당시 수카르노는 해외 순방 중)

쿠데타 세력을 보니 수카르노의 대통령 경호실까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은 인도네시아 군 장군들을 6명이나 처형하며 쿠데타를 성공시킨 것처럼 보였다.

(덩시의 상황을 재현한 인도네시아 반공박물관)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은 CIA가 그들의 움직임을 이미 파악하고 있고 또 반격을 준비해두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CIA는 수카르노에게 신임을 받고 있던 육참 참모총장 수하르토와 협력 관계에 있었다.

9월30일 밤이 지나갈 때, 수하르토와 그를 따르는 육군 장교들은 일제히 역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수도를 점거하던 공산주의자들을 사살하고 권력을 다시 확보했다.

(왼쪽에서 두번째, 지휘봉을 쥔 사람이 수하르토)

수하르토는 "솔로 강이 붉게 물들 때까지 빨갱이들을 잡아야 한다"고 말하고 전국에 군을 파견하여 공산주의자들을 처형했다.

이렇게 조직적인 처형이 가능했던 것은 CIA가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1965년 10월에서 1966년 3월까지 인도네시아 전국에서 빨갱이 사냥이 벌어졌고 하루에 약 50명이 처형된다고 할 정도로 공산주의자들을 싹 쓸어버렸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공산당 세력이 강하던 나라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밑에서 철저한 반공주의 국가로 탈바꿈했다.

수카르노는 공산주의자들과 협력하던 자신의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했고 수하르토에게 대통령직을 넘겼다.

수하르토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소련, 중국, 그리고 모든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를 끊었다.

그리고 영국과는 화해하고 말레이시아를 국가로 승인했다. (싱가폴과 브루나이는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

이렇게 하여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와의 대립은 1966년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사이는 여전히 나쁘다.

한국도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일본과 존니 교류 많이 하는 나라인데도 반일감정이 사라지지 않듯이

민족주의라는 게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동남아의 최강국을 내세우고 말레이시아는 탈동남아를 내세운다.

군사적으로는 인도네시아가 더 강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말레이시아가 더 발달했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도 야기하고 있다.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는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말레이시아로 떠나는데 그 숫자는 약 170만명에 이른다.

물론 불법 이민자들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많다.

그래서 지금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 외노자들을 추방하라고 시위를 하는가 하면

인도네시아인들은 말레이시아가 차별을 조장한다고 시위를 한다.

게다가 이러한 두나라 사이의 감정을 포퓰리즘에 이용하는 인도네시아의 정치는 말레이시아를 도발하곤 한다.

인도네시아 해군이 자국의 경비정 이름을 우스만 하룬(Usman Harun)이라 지은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1965년 당시, 강렬한 민족주의 사상을 가졌던 인도네시아 해병대원들이던 우스만과 하룬은 당시 말레이시아 영토였던 싱가폴에 잠입하며 맥도날드 건물에 폭탄을 설치하고 폭파시켰다.

폭탄 테러의 결과로 3명이 사망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우스만과 하룬을 체포했고 그들은 재판 결과 교수형을 언도받고 1968년 형이 집행되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그들을 진정한 애국자라 칭송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와 싱가폴 입장에서 보면 우스만과 하룬은 그저 테러리스트에 불과했다.

인도네시아 국방부 장관이 싱가폴에 사과를 하면서 외교 분쟁은 일단락 되었지만 인도네시아 해군은 한번 명명한 경비정의 이름은 바꾸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이런 걸 봐도 알 수 있듯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사이가 여전히 나쁜 나라이다.

솔직히 한국과 일본보다 사이가 더 나쁘면 나빴지 나을 건 절대 없다.

그렇다면 말레이시아에 가서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를 한 저 오다리 새끼의 뻘짓이 얼마나 병신같은지 짐작이 가겠지?

한국 가서 곤니치와~ 이러는 꼴임.

그런데 그게 문제가 없다고 믿는 문빠새끼의 수준 하고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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