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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숑보르.. | 19/02/17 03:50 | 추천 36

이슬람 과학의 몰락 +1069 [11]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1021712960

한때 이슬람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이 융성한 학문의 중심지였다.

오죽하면 '빛은 동방에서 온다'고 했을까.

이슬람 세계의 학자들(다만 그들 모두가 무슬림인 것은 아니었다)이 이룩한 수학, 천문학, 역법, 의학, 광학, 지리학 등의 성과는 당대에 매우 놀라운 것이어서

앞다투어 무슬림 세계에서 온 학자나 서적을 구해 가곤 했다.



그런데 이러한 기조가 중세 후기부터 이상을 보인다. 물론 중세 후기~근세까지만 해도 여전히 이슬람 세계의 학자들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대략 15, 16세기쯤을 기점으로 이 지역의 학문적 성과가 유럽에 비해 그렇게까지 압도적이진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16세기, 17세기 (이 때 유럽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난다)가 넘어가면서, 이슬람 세계는 한 때 미개인들이라 비웃던 유럽인들로부터

그들의 과학기술의 산물(갑옷이나 대포 등)을 수입하는 처지에 이른다.

그리고 21세기 현재에는....독재자들이나 다에쉬 등 지하디스트들이 과학기술을 거부하며 대학을 폐쇄하고 불태우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대표적인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

과학은 철학에서 출발한다. 먼저 철학이 "'과학적'이런 것은 무엇인가?" "어떤 것이 과학이고 어떤 것은 과학이 아닌가?" "과학적 방법론은 어떠해야 하나?" 등을 규정해 주지 않으면 과학의 정체성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 따라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철학적 설명이 뒷받침되어 있지 않으면 과학연구는 그 정당성을 잃는다.


(중세의 대학. 중세 유럽의 대학은 종교적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철학과 기타 학문들이 종교와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사실 이슬람교에서 이 과정이 더 빨리 이루어졌지만.....)

먼저 앞서 얘기하자면, 사실 중세시대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이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도 않았다. 셋을 별개로 취급하는 현대와는 다르다. 구분을 둔다 치더라도 명확한 위계가 존재했는데, 종교가 제일이요, 그 다음이 종교의 시녀로서의 철학과 기타 학문(사실 이 때에는 '과학'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된 상태가 아니었다)이 존재했다. 당장 중세 대학만 해도 그 일차적 목적은 종교적인 것이었고, 철학은 신학의 시녀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유럽은 교황의 권위 실추, 카톨릭 교회의 정치적 영향력 약화, 종교개혁 등으로 인해 세상을 설명하는 관점에 있어서 종교의 우위가 극복되었지만, 이슬람 세계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종교가 세상을 바라보는 최우선적 틀이었던 것.

이슬람 세계를 구성한 민족들이 멍청하거나 비합리적인 사람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페르시아인들은 이슬람이 생기기 천년도 더 전부터 실크로드를 관리하느라 관료제, 행정, 상거래 등에 정통한 사람들이었고, 아랍인들 역시 홍해와 아라비아 반도에서 무역을 하던 상인들이고 당장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조차 상인일 정도라 상당히 이해타산적이고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몽골-투르크족으로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이들만큼 실용주의에 물든 양반들도 찾기 힘들다. 쓸모있다고 생각하면 심지어 신앙까지도 바꿀 만큼(예를 들어 투르크나 몽골인들의 이슬람 개종은 속도도 빠르고 별다른 반발도 없었다) 제꺽제꺽 남들 것 받아들이는 데 능했으니. 고대 그리스 철학이 발달한 배경 중 하나로 상업의 발달(=상거래를 하다 보면 논리적인 사고와 합리성이 중시됨), 실용주의(=신이니 요정이니 하는 종교적 개념보다는 현실의 대상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 등이 꼽히는 것을 보면, 중동에서도 철학이 발달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더구나, 무함마드조차 "순교자가 흘린 피보다 학자의 피가 더 값지니라"고 말할 정도로 지식을 중시했다

이슬람의 대정복 시기가 지나고 무슬림들의 제국이 안정되면서,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 때 이슬람 제국이 정복한 지역들에서 그리스의 고전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막 생겨난 신생 이슬람 제국에서 고대 철학의 번역과 연구는 필요한 일이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슬람 제국의 법은 꾸란과 꾸란에서 갈라져 나온 샤리아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크루세이더 킹즈 해 본 일게이들은 알겠지만 법리 해석 하나에 사람 목숨과 왕국의 계승권이 왔다갔다한다. 예를 들어 압바스 칼리파조는 결국 쿠데타로 우마이야 칼리파조를 몰아낸 것이기 때문에 정권의 정통성을 논증하기 위해 비아랍인 계열 학자들을 대거 초빙하면서까지 철학 연구를 대폭 지원했다.

샤리아의 해석에 대해 꾸란은 "그거 사람들끼리 논의해서 합의된 걸 따라라"고 얘기했고, 당연히 샤리아의 해석을 놓고 사람들이 머리가 터져라 싸워댔다. 당연히 여기서 논리적, 철학적 기반이 탄탄한 사람들이 유리했던 것.

'논리' 하면 고등학교 때 논술 해 본 사람들은 슬슬 감이 오겠지만, 무슬림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학자들 중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였다(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신비주의 성격을 띈 신플라톤주의가 또다른 양대 산맥을 이룬다).


(압바스 시대 바그다드의 학술원 '지혜의 집')

그리하여 이슬람 세계에 철학이 융성한다. 그런데 철학은 신학과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하나 존재한다. 딱히 신의 존재가 필요하지도, 신앙이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 때문에 유럽에서도 이미 '철학의 위치는 어떻게 되나? 저거 고대 이교도들의 악마의 학문 아니냐?'란 얘기가 나왔었고, 치열한 논쟁 끝에 마침내 교회가 철학을 자신을 받들기 위한 하위의 학문으로 수용하면서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란 말이 생긴 것. 바로 이것 때문에 철학, 좀 더 정확히는 형이하학적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철학은 숙명적으로 종교와 한판 붙을 운명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오늘날에는 많은 것이 틑린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는 세상의 수많은 현상을 논리적이고 경험적으로 설명하려 한 점에서 '초기의 과학자'라 불릴 만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론을 주장한 스승 플라톤과는 달리 현실세계보다 더 우월한 드높은 곳에 따로 존재하는 '이데아의 세계' 같은 독립적인 세계를 상정하지 않았다. 이는 현실적, 인본주의적 관점으로 이어진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현상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하며, 이 인과관계가 연속적으로 이어진 것이 곧 세상이라고 보았다. 신학자들은 이 주장을 이용하여 "그 인과관계를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면 최종적으로는 최초의 제1원인인 신에 도달한다!" 고 주장했는데, 그러면 바꿔 말하면 신이 직접 건드리지 않는, 현실 속의 나머지 다른 인과관계는 대관절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는 인간이 알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은 저기 저 높은 곳에서 우릴 굽어보시게 놔두고, 우린 우리대로 이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냐? 우리가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데까진 해보자!"는 태도로 이어진 것. 바로 이러한 '인과관계의 엄밀한 검증'이 무슬림 세계의 찬란한 과학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알 가잘리, 1058~1111)

이러한 "야, 인간들 세상에선 우리 인간들이 중요하니, 우리 인간들끼리 노력해서 세상의 법칙을 좀 알아보자!"는 움직임은 대략 12세기부터 이슬람 신학(칼람)으로부터의 치열한 반박에 직면한다. 12세기의 신학자 알 가잘리라는 양반이 "쒸이이이...뿔....요새.....자칭 철학자라는....쉐끼덜은......알라의 전지전능함도 부정하고.....꾸란에 반하는 내용이나 쳐가르쳐대고......지적 유희만 남용하다가.......'철학자의 자기모순'에 빠져있다......!" 라고 대차게 깐 것.

사실 아불 파라비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철학자가 "야, 물론 우리의 이슬람교가 사회를 안정시킨 건 사실이지만, 사람은 종교적이기보다는 철학적으로 살아야돼! 무함마드 같은 종교인들도 훌륭하지만 철학자가 더 나음(!!!)! 그리고 생각해봐라. 아무리 꾸란이래도, 꾸란의 내용이 진리에 반하면 꾸란이 틀린 거야(!!!!)" 같은 소리를 떠들던 상황이었으니 종교인인 그의 입장으로서는 빡칠 일이긴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종래의 이슬람 철학자들의 주장과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해 나간다. 이렇게 보면 가잘리가 그냥 꼰대 같겠지만, 사실 가잘리 본인도 굉장히 엄밀한 철학적 논증으로 철학자들을 공격하고 꾸란, 이슬람, 신을 정당화 한 것이라....민중들이 가잘리의 생각을 지지했다! 민중들 입장에서는 인과율이니 제1시원이니 미주알고주알 하는 엘리트 계층 출신 식자층 철학자들보다는 그네들에게 익숙한 세상인 종교의 가르침이 훨씬 익숙했고, 그것을 옹호하는 가잘리의 철학이 더 와닿았던 것. 특히, 그 다음 세기인 13세기에 걸쳐 몽골이 전 중동 세계를 휩쓰는 와중에 민중들은 이슬람의 가르침에 더욱더 천착했고, 침략자들에 맞서 지하드를 외칠 필요가 있었던 지배층들도 그러했다. 대체로 이 시기는 "이슬람의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현대의 중동과 겹쳐보인다면 기분탓이 아니다).

이 때문에 철학자들은 졸지에 '무신론자'로 몰려 그들의 저서들이 저잣거리에서 불태워지는 결과를 맞는다(당대 무슬림들에게는 이교도보다 무신론이 더 큰 죄악이자 모욕이었다. 무슬림들의 사고관에서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종교를 갖는다는 점인데, 이교도는 일단 종교를 가지고는 있지만 무신론자는 그게 아니므로). 이런 와중에 철학자들은 가잘리를 위시한 신학자들의 비판에 제대로 대응하지를 못했고, 그 이후 중동의 철학은 이성과 합리보다는 신과의 합일을 중시하는 신비주의로 나아간다. 어찌 보면 철학이 종교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고, 신과의 합일 등 정신주의, 신비주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신비주의의 융성도 물론 철학사적으로 가치가 있긴 하지만, 이후 이슬람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그 영향력을 잃게 된다.

이로 인해, (형이하학적)경험주의와 합리주의 철학이 반드시 그 기반으로 필요한 과학의 발전은 그 철학적 동력을 잃었다. 결국 종교가 세상을 설명하는 제1의 자리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철학이 결국 종교를 극복한 유럽과 달리, 결국 무슬림 세계에서 철학과, 그 철학이 있어야 발달하는 과학은 결국 종교를 극복해내지 못한 것이다.


(한 때 이베리아 학문의 중심지였던 코르도바의 메스키타)

한편, 마그레브에서 이베리아 반도까지 이어지는 서부 무슬림 세계는 이성과 합리를 중시하는 전통이 좀 더 오래 살아남아, 마이모니데스 같은 유대인 학자도 배출하고 이븐 할둔 간은 역사철학자도 나오는 등 대략 15세기까지 그 합리주의적 명맥을 더 이어나간다. 역시 한떄 중세 최대의 도서관을 보유한 코르도바 칼리프의 전통이 어디 가지는 않았던 것. 그러나...

1. 광신적(이들은 이베리아의 무슬림들을 몰아내는 십자군을 수행했기 때문에 다분히 종교적, 광신적이었다)인 기독교 국가의 강성과 그로 인한 이베리아 무슬림 국가들의 쇠퇴

2. 북아프리카에서 맹목적 신앙을 중시하는(나쁘게 말해서 꼴통 광신도들) 베르베르계 왕조들의 흥기. 이들은 "니들 이베리아 무슬림들이 기독교도들에게 지는 이유는 퇴폐에 물들어서인 것!"라고 깠고, 그런 퇴폐들 중 하나로 '불신앙을 불러일으키는 뜬구름 잡는 지적 유희'도 포함되었다.

로 인해서 이 지역 이슬람 세계의 철학적 전통도 곧 끝나게 된다.

더구나 이 지역은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인 중동과는 거리가 멀고, 반대로 기독교 세계와는 지척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학문적 성과는 기독교도들에 의해 불태워지거나(7세시경 베르베르 무슬림들이 이베리아 서고트 왕국의 문물을 이교도라고 없애버렸듯이, 스페인 정복자들도 이베리아 무슬림들의 도서관을 이교도라고 불태웠다), 중동이 아닌 유럽으로 넘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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