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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이베.. | 18/10/19 15:23 | 추천 36

일제치하 조선인들의 고뇌와 대일(對日)협력 +300 [4]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0796987269






| 선요약


1. 일제시대 조선인들은 항일운동 보다는 대일(對日) 협력을 통한 계몽, 실력양성 운동이

먼저였다.


2., 물론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


3. 지금의 잣대로 친일매국노냐, 아니냐를 따지는건 어불성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은 그 나름의 고뇌외 고통이 있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4. 반일은 특정 세력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


5. 일본은 사죄할만큼 사죄했고(수십회), 배상, 경제협력까지

한국에게 할만큼 다 했음. 더 이상 과거사 문제로 왈가왈부하지 말아야함.

https://www.ilbe.com/10366310982










학교에서 배운 일제치하 36년은
수탈과 가혹, 학정의 시대였다.

일장기와 욱일기를 든 일본군 압제자에게
짓눌린 암흑 천지.

그러나 정작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은 달랐다. 도대체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것은 바로 교육.

신생국가 대한민국의 지도층들은
일본의 교육을 받고 성장한 관료 엘리트.

''그들은 후대에게만큼은 '콜라보'와 '항일'이 혼재했던 그 시대의 혼란함 대신
'항일민족주의'와 '학정'의 이미지만을 물려주기로 전래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했던 사실 하나는
반일이 특정세력의 도구로 쓰이게됐다는 사실.


https://www.ilbe.com/10596638467
(좌익성향 교사들의 반일교육 실태)














그렇다면 일제치하 조선인들의 실상은 어땠을까?

실제로 당시의 조서인들은 일제의 차별과 학정, 가해만을
받은 일방적 피해자, 수동적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제국의 척후에서, 제국의 신민으로서, 일제의 확장된 영토를 따라
만주로, 남양으로 진출하여 상업, 무역, 행정, 군사 등의 업무에 종사하며
역동적이고 치열하게 그 시대를 살아냈다.

'그 시대를 모르는 반한좌익들의 '일방적 피해자'만들기는
'페미들의 '여자는 모두 피해자', '남자는 전부 가해자' 논리만큼이나
정치적 득실이 주입된 개좆같은 선동임이 분명하다.





* 박춘금이라는 조선인은 1930년대에 일본제국의회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당시의 조선인들은 일본에 주거할 시에 선거권, 피선거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졌다.

이는 오늘날 푸에르토리코의 참정권 행사와 유사하다

미국령 해외영토인 푸에르코인들도 미국 시민권은 있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참정권은 없다.

ㅡ푸에르토리코를 대표하는 옵저버의원을 파견할 수 있지만
문자 그대로 의회표결권이 없는 옵저버다.ㅡ

이를 행사할려면 미국 본토의 state로 이주해야만 가능하다.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의 통치에 대하여 콜라보레이션을 하였다.
조선총독부의 조선인 직원수, 조선인 일본군 지원율, 일본경찰의 조선인 지원율을
살펴봐도 그 사실은 명백하다.






| 조선인 일본군 특별병 지원제 실시. 높은 경쟁율






* 조선인 직원수와 일본인 직원수가 거의 1:1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조선인들은 자식이 조선총독부 공무원이 되거나
경찰에 합격하거나 하는 일을 전혀 매국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문의 경사였고, 조선인의 지위 향상을 위한 일이었으므로
축하해주었다.

'일본군에 지원한 사람들도 '민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용기를 내어 지원한 것이다. 그들의 그런 행동은 '매국친일'이 아니라
'애국친일'로 봐야한다. 그들의 역사를 후대의 우리가 재단하고 폄하하는
행동은 과연 옳은지? 심사숙고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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