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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오래전부터 단맛에 굉장한 흥미를 느꼈지만
그 욕망을 충족시켜줄 만한 것은 꿀, 과일, 일부 단맛이 나는 식물(과 수액) 뿐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도와 동남아 유역에 자생하던 사탕수수도 그중 하나였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와서 그 지역 사람들의 입맛을 충족시켜 주었다
그러던 중 어느 인도인이 사탕수수즙을 고체로 만드는 정제법을 개발해내고
사탕수수즙을 고체로 만든 것은 Sarkara, 설탕 조각은 Khanda 라고 불렸다
현재 설탕(Sugar)과 사탕(Candy)의 어원..
그렇게 설탕의 역사가 시작된다
인도에서 만들어진 설탕과 제조법은 교역로를 타고 중동 쪽으로 뻗어 나갔다
이슬람인: !!!!!!!!!!!!!!!!!!! ???
이슬람인들도 이 먹기 간편하고 깔끔한 단맛을 내는 설탕에 반했고
사탕수수는 이슬람 문명권을 따라 퍼지면서(초록색 부분) 이슬람인들은 설탕 정제법을 발전시켜 갔다
기존의 방식으로 정제한 설탕은 당밀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흑설탕에 가까운 물건이지만
이집트에서 완전한 백설탕 제조기술이 발명되었는데
그 당시 값도 비싸고 너무나 귀한 설탕은 이슬람 군주나 부자들이 돈지랄하기에 최적이었다
요리에 설탕을 떡칠하거나 아예 설탕으로 조각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곤 했는데
11세기 이슬람 술탄이 축제 때 70t의 설탕을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
이후 이 풍습이 전해져 유럽의 지배층도 설탕으로 갖가지 조각품 만들어서 내놓는 게 유행이었다
물론 후일 설탕 가격이 내려가면서 점차 이런 광경은 사라진다
동로마 제국의 교역로를 타고 이 설탕은 천천히 유럽으로 흘러들어갔고
마침내 십자군 전쟁 중에 유럽인들은 지중해 연안의 설탕 주산지들을 일시적으로 획득
십자군: ???????!!!!!!!!!!!!!!!!!!!!
설탕을 맛본 유럽인들은 어떻게든 사탕수수를 유럽에서 재배하기 위해 애썼지만
기후가 안맞아서 극히 일부(시칠리아 섬, 스페인 남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유럽지역에서 생산이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이미 설탕의 매력에 흠뻑 빠진 유럽인들은 일단 이슬람인들로부터 수입해서라도 먹었다..
이 시기에 설탕은 의외로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약으로 쓰이는 일이 많았는데
중세 살레르노 의과대학의 교재에는 설탕의 효능으로 열병,기침,위장병에 효험이 있다고 적혀 있고
비잔티움 제국에서도 해열제로서 설탕에 절인 장미꽃잎을 처방한 기록이 있으며
물론 이슬람 문명권에서도 설탕은 중요한 약재였다
설탕이 약으로도 쓰이는 바람에 이 문제는 신학적으로 논쟁거리가 된다
금식일에 설탕을 먹으면 그것이 처벌의 대상인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자
토마스 아퀴나스: 설탕은 약인데, 금식일에 약 먹는다고 죄가 됨?
아퀴나스가 등판하여 이 한마디로 간단히 상황을 정리해버렸다.
물론 그 시절 설탕은 일개 수도사들이 집어먹을 만큼 흔하지 않았고
오히려 값이 너무 비싸서 후추,육두구 같은 향신료만큼이나 구하기 힘든 식재료였다
13세기의 잉글랜드왕 헨리 3세가 설탕 1.3kg을 구매하는 데에
현재 돈으로 450달러, 약 53만원을 지불했으니
이 모습을 봤다면 아마 놀라 뒤집어졌을 것이다
조미료, 향신료, 의약재 등 설탕의 용도는 너무나 다양했고
설탕이 귀하고 그 값이 비쌀수록 유럽인들은 오히려 욕망으로 불타올랐다
15세기 초부터 항로개척이 활성화되면서 유럽인들은 사탕수수를 재배할 최적지를 찾아 나섰고
자연스럽게 선박에도 사탕수수 모종이 일종의 필수품으로 실리게 되었다
15세기 중반 마데이라 제도, 카나리아 제도 같은 대서양의 섬들이 발견되고
그곳에 사탕수수를 가져다 심으면서
사탕수수의 서쪽으로의 여정은 다시 시작되었고
마침내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의해 사탕수수는 극적으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에 도달한다(콜럼버스의 2차 항해)
사탕수수는 카리브 해로부터 서서히 주변지역으로 퍼져나가 브라질에 도달
생산량이 독보적인 브라질산 설탕이 16세기 설탕시장을 제패하면서 포르투갈이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인다
이때 포르투갈과 함께 신대륙 정복에 혈안이던 스페인은 왠일인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당시 아즈텍,잉카를 제패한 스페인이 금,은을 캐가기에 더 집중했다는 설도 있고
무역에 관해 왕실의 통제가 너무 강해서라는 설도 있지만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한동안 대서양의 설탕무역은 포르투갈의 상대적 우위 속에서 진행된다
아메리카의 기후는 다행히도 사탕수수가 자라는 데 적합했지만 다른 문제가 하나 있었다
노동력이었다..
사탕수수는 본래 재배하고 가공하는 데 노동력이 정말 많이 들어가는 작물인데
유럽 본토에서 노동자들을 신대륙까지 수송하기도 어려웠고, 현지인들로 충당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데려와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유럽인들은 더 많은 설탕을 원했고 더 많은 노예를 데려와서 더 많이 쥐어짰다
가혹한 노동 속에 수많은 노예들이 끌려와서 죽어나가면 곧 더 많은 흑인노예가 아프리카에서 끌려오고
마침내 설탕 플랜테이션이 시작되면서 유럽으로의 설탕 공급량이 서서히 증가했다
그러나 설탕 이외에도 담배, 면화 등 신대륙의 주생산작물에 노예의 노동력은 필수적이었고
그렇게 16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삼각무역이 시작되었다
유럽인들이 총기,면직물,럼주 등을 가지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들이면
그 노예들은 아메리카로 가서 플랜테이션에 필요한 노동력이 되었고
그 산출물(설탕,담배 등)은 다시 유럽으로 공급되었다
그렇게 16세기 말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약 100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끌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브라질산 설탕의 독점체제는 어느덧 강력한 경쟁자와 마주친다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슬슬 아메리카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면서
카리브해의 섬 지역을 차례차례 먹어나가기 시작하여(기존의 스페인 영토도 공격해서 뺏고 그랬음..)
잉글랜드는 바베이도스와 자메이카, 프랑스는 마르티니크와 아이티 등을 획득
물론 두 나라 모두 새로 획득한 카리브 해 식민지에 신나게 사탕수수를 심어대면서 설탕 생산량이 급증하고
17세기 중반부터 설탕무역의 중심축은 점차 브라질에서 카리브 해 일대로 넘어온다
비슷한 시기에 카리브해 일대에서 설탕의 부산물인 당밀을 증류하여 럼이 탄생
값도 싸고 장거리 항해에 식수 대용으로 좋아서 곧 해군과 해적들의 필수품이 되었고
설탕-럼-노예의 또다른 삼각무역이 시작된다
카리브 해에서 설탕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점차 설탕 가격은 점차 내려가기 시작하고
설탕을 접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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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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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4)
뿌주부 설탕붇는거 빵처져쇼네 ㅅㅂ
ㅋㅋㅋㅋㅋ 존내많이넣네시발 ㅋㅋㅋㅋ
ㅇㅂ
설탕에 관한 책 읽었구나? 설탕 얘기도 쓰는 김에 후추,면직물,은 도 같이 써라
좋은글인데 잘못된 시간대로 인해 일베못갈듯
대항해시대 ㅇㅂ
정보 ㅇㅂ
ㅇㅂ
백종원 에서 뿜었다 ㅋㅋㅋ
잼있다 ㅇㅂ
아 이거보니깐 단거 땡긴다 편의점에 젤리랑 캔디좀 사러갔다온다
아 내가 보냈다
간만에 재밌는정보 ㅇㅂ
보지에서 설탕맛 나던 년이 생각나는구나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