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게 실시간 커뮤니티 인기글
(1851464)  썸네일on   다크모드 on
노물현바.. | 24/09/17 01:02 | 추천 34

일베간 러시아 게이임. +18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1550917900

어제 장문으로 올린글은 얼굴사진때문에 삭제된것같아서 

다시 올려본다. 

좆노잼 장문글이 될테니 3줄요약을 원하면 가서 딸딸이나 한번 더쳐라. 

---------------------------------------------------------------------------------------------------------------------------------------------------------

나는 199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에서 태어났다. 자란건 촌구석 시골이였고 

나의 유일한 여가생활은 젖소에서 갓나온 우유를 마시면서 그네를 타는거랑 

잘사는 이웃집 새끼의 "세가" 를 통해서 소닉이랑 모탈컴뱃을 하는거였음.

그렇게 다른 러시아애들처럼 유치원을 다니면서 초기교육을 받다가

나의 엄마가 한국인이랑 재혼을하면서 나를 한국으로 대리고 왔는데. 

그때당시에는 놈현이 아직 집권하고있었고 그 누구도 피아제에 대해서 몰랐었던 시절이였지. 

나는 무작정 조선 유치원으로 보내졌었고 

거기선 니들이 껵었던 학창시절이랑 비슷하게 나도 "강제 음식흡입" 고문을 당했다.

처음보는 좆같은 반찬들과 국물을 남기면 존나게 쳐맞거나 토할때까지 쳐먹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에 입학을하게 되었다.

내가 입학한 초등학교는 이경규가 나온 초량동의 "초량초등학교" 였는데 

여기서 졸업은 하지않았고 나중에 김해로 이사오면서 "봉명초등학교"를 졸업을 하게되었다.

그렇게 조선 초등학교를 졸업한 유일한 외국인이였던 나는 그때당시 문제아들이 많다고 말이많던 "경운중학교"를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당시 내나이는 3학년들과 동갑이였지만 2년을 꿇었던 나머지 1학년,2학년 들과 모두 친구가 되야했던 개족보 상황이였다. 

1학년 들어온지 얼마안되서 3학년 애들이(동갑) 나를 1학년중 한명이랑 싸움을 붙였고 

좆중딩들의 기싸움에서 나는 해야할 일을 했었고 

손가락에 철심을 박는 최후를 맞이했다. 

나랑 싸웠던 친구는 그이후에 나랑 친하게 지냈지만 평소에 행실이 그다지 좋지않았고 도박도 많이한 나머지 

몇년전에 자살로 고인이 되었다. 다른 친구한테 듣기로는 빛이 많아서 그랬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16) 의 나는 이제막 사춘기 막바지였고  담배,술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베전성기 2012년 러시아게이의 탄생시점)

그러다 다른 "드라마" 장르의 영화스토리마냥 우리 엄마는 남편과 이혼을 하게되었고 

그렇게 난 또 애비없이 비참한 삶을 이어갔는데 

이때는 학교든 뭐든 방황을 하면서 지냈다 

매일 술마시고 선생들한테 개기고 좆대로 살았지만 (니들도 알다싶이 체대출신 공무원이나 일반 좆집교사들중 제대로된 교사 찾기가힘듬)

유일한 외국인 아싸 새끼라 친구도없었고 다른 일진애들처럼 무리에 있는것도 아니였고 

그냥 외로운 늑대였다. 

그렇게 3학년이 되었고. 3학년때는 거진 매일 앞에있는 공원에서 소주 두병을 까고 담배좀 피다가 애들 하교할때 얼굴도장만 찍고 집에들어갔다.

나의 담임은 내가 좆같은 새끼인건 알고있었지만 다른 좆같은새끼들보다 훨신 낫다는걸 안건지 

나보고 얼굴도장만 찍으면 졸업시켜준다고 했다. 

그래서 막바지에는 말그대로 점심에나와서 얼굴만 보여주고 집에 돌아갔다. 

졸업하고 나서는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드카베어" 라는 이름으로 방송도 하고 시간을 보냈다.

19살때는 바로 집을나와서 독립을 하였고 우울증이 심해 술만 마시면 자해를 하곤했다. 봉합수술도 몇번받았다.

그러다 알바하던곳 주방에서 공황장애로 쓰러지고 신체도 정신도 병신이 된 나는 일을 그만두고 

당시 엄마의 남자친구 (나랑 술도한잔 하면서 얘기나눴던) 가 자살하면서 나는 더이상

사람들과 대화하는 직업보다는 신체만 쓰는 직업을 구하기로 했고 그렇게 냉동창고 물류센터에 취직을하게되었다.

아 참고로 중학교 3학년때 만났던 여친이랑 7년을 교제했는데

어릴때부터 연애했던것도 문제였고 사랑보단 정으로 만났던게 큰지 

둘다 성인되고나서 동거 2년정도하다 집에돌아오니 다른새끼랑 쇼파에 앉아서 다른새끼랑 맥주를 마시고있더라.

뭐..누굴 원망하겠노 마지막엔 둘다 서로한테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게 일을 그지경까지 만든것같다.

암튼 그당시엔 나는 2년다닌 회사를 떠나고, 주유소에서 일을하다 이용만 존나 당하는거같아서 때려치우고 

딸배를 시작했는데. 수입이 존나 좋더라. 코로나도 터지고하니 

대충타도 월 400버는건 누워서 떡먹기였다. 

딸배 몇년하다 수입도 안되고 인생에 현타도 존나와서 딸배를 그만두고 그때당시 여친의 아버지가있는 회사로 들어갔다.

여친 아버지랑은 사이가 매우좋았다. 공통적인 견해도 통했고. 일적인부분도 머리를 써야하는 cnc 가공일쪽이라 

재미가 있었다. 매일 서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며 서로에 대해서 더 잘알아갔다. 

하지만 니들도 알다싶이 cnc 가공 공장은 틀딱들의 집합소였고 

젊은 양놈새끼가 일하는걸 좋게 볼리가 없는 틀딱새끼들이 있기 마련이였고 

그중 전 해군 부사관 새끼랑 나랑 트러블이 생겨서 면전에다 욕을 존나게 내뱉고 그만뒀다. 

갈때도 없고 할것도 없고 친구도 없고 기댈곳도 없는 나는 그렇게 술을마시면서 인생을 허비하다

전여친의 그장면을 목격한게 되었던것이다.

다음날 짐을싸고 원룸을 잡고 가구도 이것저것 사서 나만의 공간을 만들었지만 

우울증과 공허함은 안쪽에서 나를 잡아먹고있었다. 

그러다 지인이 전화를 했는데 나보고 마사지 업소 카운터를 봐주는일을 해볼생각이 없냐고 물어봤는데 

이 시점이 내인생이 몰락테크트리 에서 개좆망테크트리를 탄 계기가 되었다. 

질 안좋은 깡패새끼들과 어울려다니고 

여친도, 차도, 돈도, 신용등급도 모두 다 잃은 나는 그냥 누군가가 옆에서 

나를 아우라고 부르며 나를 보호해준다는게 

그 어디에 소속이 되어있는게 좋았다. 

내가 존나 병신 머저리 덤앤더머새끼였던거지. 

이 깡패 새끼들은 처음부터 나를 형제로 생각도 하지않았고 

그저 나를 통해서 대출을받고 그걸로 빙땅치고 그돈으로 마약이나사서 좋은 시간을 보낼 생각이였다. 

시다바리 짓거리만 존나게 하고 돌아오는건 더욱더 극심한 우울증이였다. 

여기서 나는 깨닳았다.

"아..아무리 내가 한국국적에 일게이들이 다아는 진뺴이 보수새끼고 여기서 학창시절을보냈고 20년을 살며 세금까지 내지만 나는 여전히 한국인들 시야엔 외지인이구나"

라는 생각이 내 심장을 쑤시더라. 

이때부터 나는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도 한국과 조선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또한 떨쳐낼수 없었다. 

당연한거 아니겠나? 한국인인척 폼 은 잡을수있다만 와꾸는 바꿀수없는것이니  난 그들한테 항상 외지인일수 밖에없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축복인지 보답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이 힘겨운 시기에 현재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그녀는 나를 설득시켜서 모든 범죄조직과의 연류, 약물남용 을 

나의 좆같고 비참한 삶에서 없애는거에 도움을 주었고 

그렇게 우리는 둘이서 러시아에 있는 와이프 장모집에 가게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양아치새끼들을 손절을 친상태였다. 

하지만 문제는 스스로 해결되지 않는법. 좆같아도 피할수없고 스스로 해결해야 될때가 있다. 

나는 이 일련의사건들을 종결을 시킬려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양아치 새끼들중 한명인, 건달도, 반달도, 아무것도 아닌 찌그래끼 좆밥 사기꾼 새끼에 대해서 "차량횡령" 과 "사기" 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김해 전세 사기꾼 수염존나 기르는 털보 새끼 이성진 씨발새끼야 너는 간부들한테도 버림받은 나처럼 도구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야 애미뒤진 돼지년아) 

내가 한국에 있는지도 몰랐던 새끼들이

고소장 넣자말자 

나를 찾고있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지더라

처음엔 나한테 어떠한 압박을 가해서 고소를 철회할려는 의도라고 생각했지만 

지인한테 듣기로는 어떤 새끼가 만세쳐서 형량조절관련 딜을볼려고 관련된 새끼들의 모든 이름을 말하였다고 하더라. 

나야 개꿀잼 팝콘티비 였지만

하지만 왜 나를 찾는지는 의문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새끼들의 비리,통화녹음기록,메세지내용기록,사업체위치,간부이름, 심지어 영상통화 기록까지 모두 가지고있는 상태였다. 

그제서야 떠올렸다. 불난집에 내가 기름을 붓는지 그냥 지나가는지 확인차 나를 찾는거였다. 

내 애미가 뒤지지 않고서야 나는 아무리 좆같아도 짭새들한테 이름은 안판다. (김해사는 이성진 너 뺴고 시발 사기꾼새끼야 내 차랑 4000만원 돌려내라 좆밥년아) 

아무튼 나는 그이후로 뭐 나를 찾으면 죽이겠다니 뭐니 하는 병신새끼의 신세한탄을 포함하여 (지들 쳐잡힌걸 나때문인지 아는모양이다 ㅋㅋ) 신경쓰지않고 

다시 러시아로 돌아와 내 삶의 구세주인 아내랑 함께 제2의 인생을 살고있다.  

그 누구를 위해 포장된 내가 아닌

나 스스로를 위해 사는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 

가식적인 행동이 아닌 진실된 행동으로 

한번 도 누려보지못한 행복한 삶이뭔지 깨닳아가고 있다. 

지금도 당연히 마음한곳은 공허하고 이모든게 뭐가 의미가 있나 생각이 들지만 

최소한 아가리만 터는 "행님" 들의 가족이 아닌 

나를 위해서 모든걸 희생할수있는 그리고 반대로 나도 그럴수있는 진정한 "가족" 을 만났다. 













 
[신고하기]

댓글(0)

이전글 목록 다음글

67 8 9 10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