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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런 | 24/07/17 14:25 | 추천 36

재일교포가 기증한 우리나라 대사관 영사관 부지 +37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1541435614

주일 한국대사관이 있는 도쿄 미나토 구 미나미아자부 일대는 일본 왕실 친인척과 권력 실세들이 모여 살았던 일급지다.

 


 

Location: 일본 도쿄

Programme: Office

Area: 14,632㎡

Floors: 지상 7F, 지하 2F

신축 2013

 

고급 주택지 한가운데 1만 m²가 넘는 널따란 대지를 확보하고 지상 7층 규모로 세워진 대사관은 당당해진 한국의 위상을 상징하는 듯해 볼 때마다 뿌듯하다.

 




이 땅의 원래 주인은 방적회사를 만들어 성공한 재일교포 1세 사업가 서갑호 씨였다. 1952년 땅을 사들였던 그는 10년 후 1962년 광복절 기념식 재일교포 참관단 일원으로 서울을 방문해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만나고 난 뒤 이 땅을 대사관 부지로 기증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전까지 주일 한국대표부(1949년 1월 개설)는 유랑 신세였다. 운영비는커녕 임차료도 지원받지 못했다. 이런 대표부를 지원했던 것도 재일교포들이었다. 코오롱그룹 창업자 이원만 씨는 본인 소유의 마루노우치 1번지 벽돌 건물을 빌려주기도 했었다.

 




서갑호 씨의 땅 기증 이후 일본 전역에서 공관 건설을 위한 기증과 모금 운동이 본격화됐다. 1970년대까지 오사카, 나고야, 고베, 후쿠오카 등 일본 전역의 9개 총영사관이 재일교포들의 손으로 세워졌다. 비슷한 시기 재일교포들은 ‘조국 근대화’를 내건 박정희 정권의 호소에 적극 호응해 한국 투자에 나섰다.

 

한국은 박 의장이 정권을 잡은 1961년 국민소득이 82달러였다. 국가 신용이 없어 외국 투자를 끌어오려 해도 돈을 빌려주는 나라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선진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도입할 유일한 통로는 재일교포라는 게 박 정권의 생각이었다. 1965년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자마자 실천에 나섰다.

 

 

1967년 4월 1일 대한민국 최초의 수출산업공업단지로 문을 연 ‘구로공단’이 그 상징이다. 28개 입주기업 가운데 18개가 재일교포 투자기업으로 전기 전자 화학 비료 섬유 금속 등 한국에 없던 산업들이 처음 들어왔다. 구로공단 창립 주역이 된 재일교포들은 ‘경북 구미공단’ ‘마산 수출자유구역’ ‘안산 반월공단’에도 속속 진출해 일본의 선진 기술을 한국에 이식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발전에는 재일교포 도움이 정말 컸다

재일교포들 중 조총령 쪽은 북한에 엄청난 지원을 했지만 그건 시궁창으로 돈을 쏟아부은거고 우리나라는 박정희가 잘 활용한거지

 

 

조선족들은 우리나라 침략하고 학살했던 놈들이 이제는 우리 피나 빨아먹으면서 무슨 염치로 지네들이 동포라고 우기는 거냐

 

동포 소리 들으려면 재일동포 수준은 돼야 동포지

중공 중화민족 중 소수민족 조선족를 자칭하는 놈들이 무슨 동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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