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게 실시간 커뮤니티 인기글
(1796546)  썸네일on   다크모드 on
TheEagle.. | 24/04/29 21:45 | 추천 31

(자연저장소) 저먼옛날,고대 한반도의자연은 어떠했을지ARABOZA +5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1529937598

오늘날 한반도의 숲과 들하면 떠오르는 느낌은 대략

1. 아담한 동네뒷산과 소나무숲,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고라니, 멧돼지와 같은 야생동물들






2. 시골의 경우 마을 사이로 넓게 펼쳐져 있는 평화로운 논과 밭



과 같은 이미지들을 떠올린다. 

그런데 고대로 거슬로 올라가 1000년전, 혹은 더 나아가 1500년전의 한반도도 과연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모습과 같았을까?

카메라가 나오기 전인 한참 먼 옛날의 한반도의 모습을 자세히 알수는 없겠지만,

남아있는 기록들을 토대로 그 지금과는 어떻게 달랐는지 유추해보도록하자.

과거 삼국과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한반도의 산림과 습지는 다양한 종류의 야생동물군이 분포해 있었다.

신라시대에 쓰여진 "민정문서"에 따르면,


(통일신라시기 현재의 청주지역인 서원경 지역 4개마을의 정보를 기록한 문서. 현재 일본 동대사에서 보관중이다.)


마을 전체에서 경작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4.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당시 신라에서 가장 컸던 지방 도시들 중 하나인 서원경(지금의 청주지역)의 상황을 기록해둔 것이었는데,

현재로 따지자면, 광역시중 하나인 울산의 인구, 경제 상황, 각정 행정사항들을 기록해논것으로 비유할수 있겠다.

지방 대도시라는 곳의 경작지 상황이 이러했다는 뜻은

동시대 한반도 전체를 놓고 생각해본다면,

평균적인 농경지 비율은 4%도 되지 않았을거라는 결론에 도달할수 있다. 


(모노노케 히메에 영감을 준 된 일본 야쿠시마 숲)

즉, 그 당시 한반도의 땅은 드문드문 있었던 마을들 사이사이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거대한 원시림, 야생의 땅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러한 원시림에는 수종이 몇백년이 넘는 나무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고려에 들어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

고려와 무역과 교류가 활발했던 송나라의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이란 책엔 이러한 묘사가 있다.





"대부분 고려의 촌락들은 주로 큰 산의 산자락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거주민들은 마을 옆 산비탈을 따라 나무를 베어 논 만들었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야생의 땅이다



즉, 고려때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산의 끝자락마다 조그마한 마을이 있었고,

산끝자락 평지와 만나던 곳에 살던 마을 사람들은

산비탈을 경작하여 논으로 쓰고 있었고,

여전히 드넓은 영역의 평지는 개발되지 않은 채, 야생동물들이 활보하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웹툰 호랑이형님 캡쳐. 산자락 끝에 목책으로 둘러쌓인 조그만 마을이 있고, 그 옆에 계단식 논이 있다. 주변은 야생 그대로의 원시림)




아마 이런식으로 산자락 끝에 마을이 위치해 있고,

산의 경사를 따라 계단식 논이 이루어져있을거라 추측할수 있다.

우리가 지금 흔히 보는 지평선과 마주닿는 광활한 평야의 논은 그 때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평택평야, 김포평야, 김제평야, 호남평야 같은 드넓은 땅들은

그저 흐르는 하천과 무성한 수풀 사이의 짐승들과 도적떼들만이 존재했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땅이었던 것이다.



(김제평야. 지금 민가와 논으로 빽빽한 이곳은 1000년전 사람이 발길이 닿지 않은 무주지였을 것이다.)



(평야에 위치한 야생갈대밭)

또한 대한민국 국보7호이자 고려 현종 1026년에 세워진 봉선홍경사 갈기비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국보 7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처음 이 땅에는 전혀 객주집이 없어서 사람의 땅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다가 갈대가 우거진 늪이 있어 강도떼들도 상당히 많았다..."




광활한 평야에는 야생짐승들 뿐만 아니라, 여행객의 목숨을 노리는 강도떼들도 무성했던 모양이다.

오늘날 논과 민가로 가득채워진 시골을 떠올리면, 그저 야생 그대로의 모습이 아닐수 없다.

그렇다면 마을사람들은 산과 들에 사는 야생동물로부터 어떻게 마을을 보호했을까?



이러한 흉폭한 자연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있었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마을 주위를 커다란 목책으로 둘러 보호하였다.



(웹툰 호랑이 형님 캡쳐. 맹수와 강도떼에 대비해 목책보강을 하는 마을주민들)


 

하지만 이렇게 커다란 나무들을 둘러 쉴드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대범한 호랑이들이 인간이 만든 거대한 울타리를 넘어 

민가에 피해를 끼치는 일이 자주 있었던 것 같다.


(웹툰 호랑이 형님 캡쳐. 목책을 넘어가는 호랑이들)



(웹툰 호랑이 형님 캡쳐. 목책을 넘어 마을을 침범한 범들)

17세기 조선 인조 당시의 기록엔

"의주에 범이 성벽을 넘어 사람들과 가축을 해하였다." 란 기록이 있고

심지어 조선 태종때 기록엔

"범이 성을 넘어와 근정전 뜰에까지 들어왔다." 란 구절도 있다.

이처럼 맹수가 없는 현재의 생태계와는 달리

한반도에는 호랑이를 비롯한 표범, 늑대들이 가득 넘쳐났었다.




범이 마을을 습격해 사람들이나 가축을 물어가거나 해치는 일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참나무숲)

그런데 몇백년 된 고목들과 맹수들이 우글거리던 한반도의 숲과 들은 대체 어떤 이유로 전부 사라져버렸을까?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생긴 화전민들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유럽의 화전민)

인구 증가와 더불어 농경지가 차차 부족해지자,

가난했던 조선이 민초들은 논과 밭을 확보하고자 산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그런데 수백년된 나무들이 즐비한 원시림이 사람이 베어낸다고 하여 쉽게 없어질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이들이 생각해낸 것은, 바로 불을 질러 아주 빠른시간안에 숲을 싸그리 다 태워버리는 것.





이들은 불을 놓아 숲을 제거하고, 그 위에 농사를 짓다가 

지력이 다하면 주변의 다른 숲으로 옮겨가 다시 불을 지르고 농사를 시작했다.

이것이 반복될수록 자연스레 한반도의 고대 원시림들은 점점 파괴되어 사라져갔고, 

그에 따라 보금자리르 잃은 야생동물들도 사냥을 당하면서 점점 자취를 감췄다.


 
(17세기의 소빙하기. 100만명내외의 아사자를 낸 경신대기근도 소빙하기의 영향이라는 연구도 있음)

거기다 엎친데 겹친격으로 17세기에 발생한 소빙하기는,

겨울에는 동해가 얼어붙을정도로 기온변화를 일으켰고,

기온하락으로 인해 흉년과 추위가 지속되자

화전민들은 이에 반응해 더 미칠새라 숲을 태워갔고 고대 원시림은 자취를 거의 감추기 시작한다.

즉, 소빙하기로 인한 취위 + 농업 생산력 감소 + 온돌의 보급으로 인한 많은 수요의 땔감으로 인해

고려시대까지 사람이 손길이 닿지 않았던 야생의 땅은 수풀한포기 보기 힘든 민둥산으로 변해갔다.  


1663년 현종때의 보고를 보면,

"화전이 극심할 정도로 이루어져, 수백년된 숲과 나무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이는 국가적 재난..."

이란 기록도 있을 정도로 산림이 황폐해졌다.

이러한 노빠구 개발과 화전속이 진행되면서 19세기에 이르러,

강원도와 경북 깊은 산속을 제외한 나머지는 민가와 논으로 가득찼으며

왠만한 산들은 대부분 화전으로 황폐해져 민둥산이 되어버렸다.





위 사진들에서 바로 알수있듯,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산자락에 나무한그루 남지 않는 민둥산들이 한반도의 흔한 모습이게 된다. 

조선을 합병한 일본은 사막과 같은 조선의 허허벌판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4월 3일을 식목일로 잡아 각 학급마다 나무심기운동을 벌였으나 



1950년 6.25전쟁의 포화를 거치며 한반도의 산림은 다시 민둥산으로 원상복귀된다.
 
전쟁으로 인한 산림피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전후 UN보고서에서

"한반도의 산림은 복구불가" 라는 결론까지 내리게 됨.



(참고로 이건 휴전선 접경 지역의 북한의 산인데, 우리나라의 산과 달리 허허벌판 민둥산임을 알 수 있다. 17세기 조선때부터 시작된 산림파괴러쉬는 북한빠가새끼들한텐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때에 이르러 

식목일을 지정하고,

더 이상 나무를 베지 않도록 석탄연료를 전국적으로 보급하고,

1967년 산림청을 발족한 후,

10개년 산림녹화산업을 강력히 추진한다.








이렇게 10년동안 집약적으로 복구사업을 진행한 결과,

비록 과거 고대의 원시림만큼은 아니지만,

황폐했던 민둥산이 사라지고 다시 푸르른 숲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는 지난 300년 내내 나무한그루 없었던 조선의 산에서 벗어나,

고대 한반도 야생의 땅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되돌려 놓는데 성공한다. 




3줄 요약
1. 먼 옛날 한반도는 사람의 손길 하나 닿지 않는 원시림과 맹수들이 즐비했던 야생 그대로의 땅이었음
2. 17세기 조선시대에 이르러 화전의 발달로 순식간에 다 씹창 + 북괴의 침공으로 인해 완전히 GG
3.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산림복구사업을 추진해 다시금 푸르게 만들어 놓음
[신고하기]

댓글(0)

이전글 목록 다음글

1 2 34 5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