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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스.. | 20/02/15 04:45 | 추천 50 | 조회 7687

[텔레그래프] 주앙 세크라멘토 : 대학 축구계에서 시작해 주제 무리뉴가 이끄는 토트넘으로 간 '학구적인' 코치 +4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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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앙 세크라멘토를 소개합니다:
대학 축구계에서 시작해 주제 무리뉴가 이끄는 토트넘으로 간 '학구적인' 코치
텔레그래프 / 샘 왈라스

세.PNG [텔레그래프] 주앙 세크라멘토 : 대학 축구계에서 시작해 주제 무리뉴가 이끄는 토트넘으로 간 '학구적인' 코치
https://www.telegraph.co.uk/football/2020/02/14/introducing-joao-sacramento-academic-coach-has-gone-university/


주앙 세크라멘토는 18살 때, 포르투갈 북부 지방에 위치한 고향 바르셀루스를 떠나 사우스 웨일즈로 갔고, 축구 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그 때로부터 10년 조금 더 지나, 꿈을 이루었다 - 7경기 정도였지만 말이다.?

주제 무리뉴 감독이 11월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임명했던 토트넘 홋스퍼의 수석코치, 세크라멘토는 2017/18 시즌 릴의 지휘봉을 잡았던 세 명의 감독들 중 가장 높은 경기 당 평균 승점을 기록했었다. 크리스마스 이전에 경질된 마르셀로 비엘사도 이 세 명의 감독에 포함된다. 감독 대행의 직책으로 릴을 이끌었던 세크라멘토는 리그1 6경기, 리그 컵 1경기를 치뤘는데 겨울 휴식기 이전에 펼쳐진 이 리그 컵 경기에서 패배를 당했었다. 당시 고작 28살 밖에 안된 이 감독 대행이 지휘했던 리그 경기 중에는 승리를 거뒀던 리옹 원정 경기도 있었다.?

현재 31살인 새크라멘토는 무리뉴 감독이 1980년대 중반 리스본에서 코칭을 공부할 때 등장해, 포르투갈의 비토르 프라디 교수가 발전시킨 전술 주기화 이론을 공부했던 가장 최근의 세대이다. 이 이론은 무리뉴 감독에 의해 대표되는데, 무리뉴 감독과 새크라멘토는 둘 다 학업능력이 뛰어났고 맨체스터 시티 전, 벤치에서부터 제 4부심 (주: 피치 밖에서 주심과 부심을 도와주는 심판) 쪽으로 전력질주하는 둘의 모습이 담긴 유명한 영상클립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축구 경기에서 발생하는 부당함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세크라멘토는 좋은 학생이었지만, 포르투갈 축구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중 한 명과 연이 닿으면서 글래모건 대학 -현재 사우스 웨일즈 대학 (USW)- 재학 당시 시간강사가 될 수 있었다.

그 인물은 바로 릴의 단장이자 레알 마드리드에서 함께 일했던 무리뉴 감독의 친한 동료, 루이스 캄포스였다. 캄포스 또한 바르셀루스 인근이 자신의 고향인데, 세크라멘토는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의 훈련과 매치데이 데이터를 분석한 대학 학위 논문을 캄포스에게 보냈었다. 세크라멘토는 레알 마드리드의 상대 팀에 대한 상세 보고서를 작성해 보내기도 했는데, 캄포스는 해당 내용을 상당히 인상깊게 생각해 세크라멘토를 구단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세크라멘토와 축구계 가장 강력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캄포스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무.PNG [텔레그래프] 주앙 세크라멘토 : 대학 축구계에서 시작해 주제 무리뉴가 이끄는 토트넘으로 간 '학구적인' 코치

세크라멘토는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 클럽 SC 브라가 아카데미에서 미드필더로 뛰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축구와는 아무런 접점없이 축구계에 발을 내딛었다. 그의 아버지 에르네스티노 씨는 전기 엔지니어였지만, 그의 아들은 사우스 웨일즈 대학에 재학하며 축구 코칭과 퍼포먼스 프로그램을 배워 운동 지도 박사학위를 땄다. 에르네스티노 씨는 아들이 자신의 꿈을 쫓아가길 원했지만 아들, 세크라멘토는 스스로 10대 때 꿈꾸었던 음악인의 꿈을 접었다 - 세크라멘토는 기타리스트로서의 재능이 뛰어났다.

현재는 웨일즈 축구 협회의 기술이사 직을 맡고 있는 당시 사우스 웨일즈 대학의 축구 팀 감독, 데이브 아담스의 수석 코치가 세크라멘토가 맡았던 첫 번째 수석 코치 직이었다. 이들은 영국 대학 리그 그리고 대학 스포츠 프리미어 남부 리그에서 세 번의 승격을 이뤄냈었다. "많은 소년들이 감독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아담스는 말했다. "주앙은 그럴만한 기술과 추진력을 가지고 있었죠. 색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던 학생이었어요. 축구계에서는 드물게 엄청나게 학구적인 녀석이었습니다."

"모든 훈련법에 대해 공부했었죠. 비디오 분석과 스포츠 과학 그리고 선수들이 어떻게 축구를 배워나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주앙이 가지고 있던 다양한 재능들은 시간이 지나, 주앙이 자신감을 가지면서 그를 더 도와줬습니다. 주앙을 보면, 선수들과 잘 지내고 있고 유대관계를 잘 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에요. 유대관계를 쌓는 건 엘리트 수준에서는 정말 중요한 것이거든요. 대학 팀에서도 주앙은 선수들 몇 명 보다 나이가 더 어렸었어요. 그는 그런 환경에 항상 익숙해져있었죠. "

아담스가 말한 바에 따르면, 세크라멘토는 경기 중 세부적인 부분들을 알아차리고, 빠르게 영상클립을 준비할 수 있는 아주 뛰어난 비디오 분석관으로서의 면모를 스스로 보여줬었고, 때문에 코치들은 중요한 부분들을 간단하게 선수들에게 지시해줄 수 있었다고 한다. 세크라멘토는 카디프시티 U15 팀을 3년동안 맡다가 웨일즈 국가대표 팀의 비디오 분석관으로도 일했었다. 당시 그는 사우스 웨일즈 대학에서 코칭과 퍼포먼스 프로그램 전공을 모두 마쳤었고 FAW 장학금도 받았었다. 세크라멘토는 작성한 논문 덕분에 프리미어리그 측 팀들로부터 인정받았고, 몇몇 구단들에게는 신뢰할만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었다. 또한, 그는 UEFA B 라이센스와 A 라이센스를 취득해 시간강사로도 활동했었다.

그의 커리어를 바꿔둔 것은 캄포스에게 건넨 학위 논문이었다. 무리뉴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2013년 첼시에 부임했을 때, 캄포스는 모나코로 갔고 세크라멘토는 2014년 4월에 모나코 분석 부서 (스카우트) 에서 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 아래서 일했지만 이 후에는 베네수엘라 태생의 포르투갈 감독 레오나르도 자르딤 감독 아래서 일하게 되었다. 자르딤 감독은 세크라멘토에게 훈련 세션을 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분석 부서에서 코칭 부서 쪽으로 이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캄포스가 2017년 1월, 릴의 단장으로 부임했을 때, 그는 세크라멘토를 1군 수석 코치로 데려왔다. 그 해 5월 비엘사가 릴 감독으로 부임했었는데, 릴에서 비엘사 감독은 짧고 힘들었던 시간을 보냈다.

비엘사 감독과 캄포스는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성에 대해 상당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던 사실이다. 그리고 비엘사 감독이 직무 정지 처분을 받게 되자 -이 후 11월, 팀이 강등권에 허덕이게 되자 경질되었다- 세크라멘토가 대행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세크라멘토의 릴은 리옹 뿐 아니라 툴루즈를 잡기도 했었고 니스와의 홈 경기에서는 무승부를 거뒀었다. 그렇게 크리스토프 갈티에가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세크라멘토의 결정적인 역할 덕분에, 릴은 승점 1점 차로 강등 플레이오프는 면하게 되었다.?

캄포스에 의해 임명되고, 캄포스의 지지를 받은 코치. 세크라멘토는 무리뉴 감독의 관심을 다시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크라멘토와 무리뉴 감독은 일전에 마드리드에서 짧게 만났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직 이후 휴식기를 가진 무리뉴 감독은 힘든 일을 갈망하고, 선수들과 융화될 수 있으며, 자신의 스타일의 보완점을 찾아줄 젊은 수석 코치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무리뉴 감독과 세크라멘토는 서로 함께 일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논의해보았고, 무리뉴 감독은 세크라멘토에게 오퍼를 넣었다.

전술 주기화 라는 공통의 철학은 둘의 협업에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4개의 핵심 요소들 -기술적인 부분, 신체적인 부분, 전술적인 부분, 정신적인 부분- 이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 중심이 된다. 무리뉴 감독과 세크라멘토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트레이닝 세션 또한 '이 4가지가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으면, 선수들은 온전히 활용될 수 없다' 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모든 트레이닝 세션은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게임 모델' 의 세부 내용에 맞춰 진행된다.?

무리뉴 감독처럼, 세크라멘토는 피라미드 맨 아랫층에서 시작했고 빠르게 떠올랐다. 무리뉴 감독은 1980년 대 말에는 체육 교사였지만, 지역 클럽인 세투발에서 유스 코치를 맡다가 1군 수석 코치를 맡게 되면서 떠오르게 되었다. 결국 그는 마누엘 페르난데스 감독을 따라 다른 클럽인 이스트렐라 아마도라로 떠났고, 원래는 통역사였지만 바비 롭슨의 수석 코치로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일하게 되었다. 세크라멘토처럼 무리뉴 감독은 영국에서 코칭 라이센스를 취득했다 -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가 주관한 곳에서 말이다.?

유명한 이를 옆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 혹은 선수 커리어가 없는 상태에서 정상을 바라보는 것은 길고 험난한 여정일 것이다. 언어를 능숙히 구사할 수 있어야하고, 어디로든 가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하며, 강력한 지위를 가진 이의 관심을 받아내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세크라멘토는 어디까지 나아갈까? 아담스는 말했다. "그 녀석, 대단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어요." 포르투갈을 떠나 사우스 웨일즈로 왔던 10대 소년이 지금까지 쌓은 커리어는 세크라멘토가 훨씬 더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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