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5년
아직 영하와 영상을 왔다갔다하는 3월,
나는 종합미디어디자인과에 입학해
자기만 일주일에 한번 과제 내는 줄 아는 교수님들에게 기가 쪽 빨려 구울이 되었다.
처음 보는 수업내용, 처음 써보는 어도비툴은
성인 되기 전에 써본 그래픽 프로그램이라곤 사이툴(무설치)뿐인 나에게 너무 가혹했다.
그리고 입학전부터 루리웹에서 철저하게 조기교육한
예체능계 대학선배의 꼬장과 가혹행위를 각오하고 있었지만
선배라고 다를까
저자들도 구울이라 후배한테 꼬장부릴 체력따윈 없었다.
교류도 없었던 터라 앞으로도 평생 만날 일 없을 듯 하다
아무튼 당연하다는 듯이 n일연속 교내 야간작업 기록을 갱신하던 도중
내 체력은 벼랑 끝에 몰려버렸다.
그도 그럴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빈백에서 2시간 기절 수면
*하루 2끼 휴게실 라면자판기 판매왕
*부설 갤러리에 냉수만 나오는 샤워실에서 수명감소 냉수마찰
을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안되겠다 과제고 뭐고
뒤져도 오늘만큼은 집에가서 뒤져야겠단 생각에
금요일 밤 10시에 짐을 싸고 나간 딸피.
하지만 내 몸은 경기도 남부에서 서울 북부까지 갈 체력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10시 반
배차가 더럽게 느린 학교 버스정류장에 눕듯이 기대며 막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만 타면 집에가서...밥묵고 샤워하고..
해피타임도 가지고 다해야지 다짐한 나
2시간 즘 지나 집에 도착한 나
놀랍게도 어머니는 심야에도 주무시고 계시지 않았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어머니와 포옹 한번 갈@기고
꿈에 그리던 집밥을 두 공기 해치워버린 뒤
뜨신 아랫목 이부자리에 바로 누웠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엄마 내일은 아침 안먹을거니까 깨우지마세요" 라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너 아직 집에 안왔는데?"
그렇게 나는 냉혹한 경기도 한바닥에서 눈을 뜰 수 있었다.
'이런시!팔 뭐야!'
나는 아직도 학교 앞 버스정류장이었다.
시간은 새벽 4시 반, 날씨는 0도와 영하를 왔다리갔다리 할 때
꿈에서 어머니가 깨워주지 않았다면 난 그대로 거기서 영면할 뻔했다.
그걸 반증하듯이 내 좌반신과 얼굴을
성에와 이슬의 중단단계인 무언가가 싸악 덮혀있었다.
세상에 시발 이럴수가
내 인생에 노숙을 한 적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기절하고 노숙한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왼쪽 뺨이 마비되는 불쾌한 감각과 뒤질 뻔 했다는 공포감, 그리고 잠이 깨지 않은 나는
잠이 덜 깬 덕에 이상한 깡이 생겨
자주 가던 상가로 들어간 뒤
뒷문 계단에 쪼그려 앉아 해가 뜰 때까지 다시 자고 일어나서 끝끝내 귀가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물려주신 타고난 강골이 없었다면 누군가가 내 시체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조상이 보호해주는 운은 다 쓴거같으니
영하의 날씨에 땅바닥에서 자다 살아남는 뽀록은 두 번 다시 없겠지
젊을때 건강챙기자
뒤지기 싫으면.
+여담
학교에 있던 라면자판기는
라면을 끓여주는게 아니라 컵라면이랑 띠꺼운 스냅으로 나무젓가락을 뱉어주는 기계였는데
댓글(21)
이아저씨 썰 다 한명 맞음? 하깈 저정도 내구성을 가진사람이 많지는 않을거야... 기안정도?
아니 진짜로 개깜짝놀랐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슨 앵간한 공포영화 뺨치는 전개네 이거 ㅋㅋㅋㅋ
빨리 일어나
일어나면 2015년일테니까
코인 조지고 나 좀 먹여살려
버스아조시가 안깨워줬냐...
예전에 이 썰 읽었던 기시감이... 나도 꿈꾸는 건가
뭐지 재탕인가 본적있는거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