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한 날 까이는 ㅂㅅ 찐따 고종
그러나 그에게도 칭찬할만한 업적이 2가지 있다.
1. 항일 의지를 끝까지 유지함
비록 고종이 조선이 망하는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나라 뺏기는 걸 막으려고 시도'는' 계속 했다.
그게 실패해서 그렇지
을사늑약을 체결하는 것을 끝까지 거부했고,
(합의 없이 불법 체결해서 '을사조약'이 아니라
'을사늑약'이라고도 부른다)
을사조약 이후 일어난 의병들을 지원하기도 했고,
외교권 빼앗기자 을사조약이 불법으로 체결되었음을
전세계에 알리고자 헤이그 특사를 파견했다.
헤이그 특사를 빌미삼아 퇴위당하자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을 5차례나 시도했다.
(물론 고종이 하는 일이 늘 그렇듯, 5번 다 실패했다.)
당시 사람들도 고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으나,
그래도 고종을 군주로 인정하고 있었으니
그의 안산일에 수많은 인파가 모였고
반일 감정이 부글부글 끓던 민중들이
3.1 운동이라는 대사건을 일으키게된 원인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종이 살아 생전 시도한
항일행동은 효과가 미비했지만
그의 죽음이 일본이 가장 크게 엿먹은 사건인
3.1 운동의 원인 중 하나였다...
그리고 1번째 보다 확실한 2번째 업적,
미터법을 도입했다.
댓글(24)
아빠 꼭두각시 노릇하다가 아내 꼭두각시하던 시절이라
본인 사리사욕 때문에 항일의지를 유지한걸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됬든 그게 국민들의 구심점이 된것도 웃기긴 해
외세를 쫓아내고 왕을 지키자는 대원군 입김이 들어간 동학농민운동(민란)을 일본군과 함께 조선군 기관총으로 갈아버리고 청일전쟁나게 만들며 니콜라이 2세마냥 굴었음
니가 썻듯이 민란으로 봤으니까. 애초에 대원군 입김이 들어간 걸 고종이 좋아할 리가 있나
이 고종 새낀 지 권좌지키려고 똥꼬쇼하는걸로밖에 안보임. 청제국,러시아제국 황실의 오판을 고종이 그대로 번복했고 일본의 지식인들도 조선얘네 망하는 테크탄다고 걱정했음
일본이 진짜 외교적으로 사보타주한 건수가 너무나도 많고 때문에 정치적, 외교적으로 뭐 할때마다 다 실패한게 너무도 많지. 더 멀리보면 조선말기 국가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것과 두번의 양요도 영향이 너무나 크고
진짜여?
고종 아니었어도 미터법은 쓰게 되어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