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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그.. | 20/01/20 02:26 | 추천 23 | 조회 1315

의사로 살면서 경험한 썰 #19 +618 [8]

보배드림 원문링크 https://m.bobaedream.co.kr/board/bbs_view/best/277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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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와서 죄송합니다.


유독 불운한 한주였던것 같습니다.


2020년은 주위를 살펴보는 한해가 되어야겠습니다.


제 이야기를 담은 만큼 읽기전용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불펌시 강력 대응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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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뱃고동소리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었다. 밤새 응급환자는 없었다. 매일 전화대기 상태로 잠을 잔다는것은 굉장히 괴로웠다. 보건소로 전화하는건 쉽지만 그것을 두고 매일 대기하는 나는 너무 힘들었다. 시끄러운 벨소리에 자다가 깨면 깜짝 놀라기를 반복했다. 비슷한 벨소리가 주위에서 나도 반사적으로 심장이 벌렁거렸다. 밤에 잠들면서 오늘만큼은 전화한통 없기를 바랐다. 


그러나 여지없이 전화는 걸려온다. 9시부터 진료시작이지만 7시부터 일어난 노인들은 궁금한걸 전화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런 전화를 받다보면 잠은 깨고 짜증만 쌓여갔다. 혹시라도 그 사이 응급환자가 생길까 두려워 받지 않을수도 없었다. 응급한 전화 이외에는 하지 말라고 방송까지 했지만 그들은 귀를 닫고 입만 열었다. 그녀가 깰까봐 결국 밖으로 나왔다.


거친 하품을 하며 진료실로 내려왔다. 더벅머리와 주름진 가운 그리고 크록스 신은 모습이 영락없는 섬의사였다. 여름은 아침해가 빨리 떴다. 일찍 내려왔음에도 많은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같이 찾아온 그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아침같이 진료실을 온 사람들은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얼마나 아팠으면 아침같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을까 란 생각을 되뇌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었다.


아침진료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왔다. ㅈㅅㅇ는 잠꾸러기였다. 전날 섬으로 들어온게 무리였던지 시끄럽게 해도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평소에 잠이 많긴 했지만 이렇게 오래자는 모습은 처음 봤다. 그녀의 긴 다리가 침대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어느새 내 침대는 그녀의 것이 되어버렸다. 살포시 그녀의 발을 이불속으로 집어놓고 조용히 내려왔다.


내 방 주위를 떠돌고 있었지만 행복했다. 그녀가 내방에 있는것만으로도 든든했다. 그 방의 주인은 ㅈㅅㅇ이었다. 그녀의 진주빛 구두코는 현관문을 향했다. 방의 일원이 되어 언제든 나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였다. 구두의 방향이 달라지지 않고 계속 그렇게 머물러 있었으면 했다.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어제 그녀가 들어올 때 났던 그 소리였다. 배가 접근하면 선장은 뱃고동소리를 낸다. 그 순간 섬에 있는 모든 차들이 항구로 간다. 배를 타러가는 사람이거나 섬에 들어오는 사람을 데리러 가는 사람이거나.. 사연은 다양하지만 섬에서는 가장 설레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마트에 떨어진 고기와 식료품이 채워지는 순간이었고 무언가 고장난 사람들에겐 AS 기사가 찾아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토록 고립된 섬에서 유일한 연결통로인 배는 모든 섬사람들에게 설렘을 줬다.

나에게도 하나의 설렘을 줬다면 그것은 당연히 그녀 ㅈㅅㅇ이었다. 






2. 섬 생활 내내 가장 힘들게 했던 환자


ㄱㅇㅈ. 그 사람은 섬생활 내내 나를 힘들게 한 몇명의 환자중 한명이었다. (이미 언급했지만 이장모임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장도 1년내내 나를 괴롭혔다) 

ㄱㅇㅈ. 그 사람을 처음 만난건 여름 어느날 새벽 3시였다. 자고 있는 도중 전화가 와서 깼고 그 사람은 지네에 물려 다리가 움직이지 않으니 와달라고 했다. 얼마나 아프면 그 시간에 전화할까 싶어 잠을 깨고 집으로 찾아갔다. 그 사람의 집은 대부분의 섬사람들이 사는 지역과도 꽤 떨어진 곳이었다. 가로등불 하나 없는 외딴지역으로 가는게 조금은 무서웠다. 

들어가는 집 또한 무서웠다. 언제 정리했는지 모를 집안살림. ㄱㅇㅈ은 거실에 누워 한쪽 다리를 쭉 펴고 있었다. 물린 다리를 보여주며 움직이지 않는다며 주사를 놔달라고 했다. 가져온 주사 두방을 놔주고 아침에도 호전이 안되면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그는 자기를 물게한 지네를 보여주며 이놈이라며 가르켰다. 좀 더 제대로 봤어야 했는데 제대로 보지 않은게 잘못이었다.


또 며칠이 지났다. 자고 있었다. 새벽 3시에 또 전화가 걸려왔다. ㄱㅇㅈ이었다. 술취한 목소리로 지네에 물려 팔이 아프다고 했다. 지네 농장도 아니고 며칠상간 두번 지네에 물린다는건 말도 안되는것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사람 집으로 향했다. 혹시나 무슨일이 생길까봐 경찰에 연락을 해둔 상태였다. 도착하자마자 그 사람은 헬기를 불러 달라고 했다.

물렸다는 팔을 보니 물린 자국은 커녕 붉은 반점도 없었다. 정말 아픈것 맞냐고 하니 맞다며 공격적으로 변했다.

그의 입에선 술냄새가 진동했다. 거실에는 초록병이 나뒹굴고 거실 한켠에는 그동안 마셔온 소주병들이 모여 있었다.


물린 지네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자 당황한듯 쓰레기통을 뒤졌다. 아프다던 팔이 기적처럼 나았다. 나는 명의임에 틀림 없었다. 자유자재로 쓰레기통을 흔들고 있었다. 아프다고 하지 않았냐고 말하자 당황하며 아픈데 선생님 때문에 뒤진다고 변명을 했다.

쓰레기통에서 꺼내올린 지네는 죽은지 몇주는 지났을법한 굳은 상태였다. 

경고했다. 다시 한번 술먹고 나를 오게하면 그때는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그러자 쌍욕을 하며 내게 주먹을 날렸다. 소싯적 복싱을 배워본 적 없는 나는 가까스로 그 사람의 주먹을 피했다. 나는 그대로 집을 탈출하여 경찰서로 향했다.


밤늦게 들어오는 나를 경찰은 짜증스럽게 대했다. 뭐 이해는 갔다 밤늦게 누군가 온다는거 굉장한 스트레스라는거 안다.

상황 설명을 했다. 경찰은 듣는둥 마는둥 글을 작성했다. 경찰 신고 기록을 남겨주고 다음날 해뜨는대로 조서 작성하러 오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경찰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그사람 미친놈인데 왜 무시하시지 문제를 만드시려하십니까?"

"문제는 그사람이 만든거지 제가 만든겁니까?"

"어차피 섬에서 시끄러워봐야 좋을거 없습니다 왠만하면 그냥 돌아가시죠"


어이가 없어 잠이 다 꺴다. 섬에서는 나를 보호해줄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내 몸은 내스스로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ㄱㅇㅈ 또 새벽2시쯤 경찰과 보건소에 등장했다. 처음에는 ㄱㅇㅈ인지 몰랐다가 얼굴을 보고서야 그사람임을 알았다. ㄱㅇㅈ은 어깨가 아파 헬기를 타야한다며 경찰에 연락했고 경찰은 내게 정말 헬기를 타야하는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술주정하고 나타나면 가만 안둔다고 했죠?"

"ㅅㅂ 나 아프다고 헬기 부르라고!!!!"

"지금 당신 아픈거 의학적으로 맞지도 않고 그런 사람들 타라고 헬기 보내는거 아니야"

"너 ㅅㅂ 죽여버릴거야"


그 사람은 내 가슴팍에 주먹을 날렸다. 아팠다. 내 분노는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 

이판사판이었다. 경찰도 도와주지 못할거 내가 처리해야겠다 싶었다. 


"그래 죽여바 000야" "너 같은거 하나도 안무서워"

주먹으로 머리라도 한대 쳤어야 했는데 그 육실헐 경찰놈들은 그 순간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 팔을 잡고 말렸다.

ㄱㅇㅈ은 끌려나갔다. 그 사람은 끌려나가면서 몰래와서 내 목을 따버리겠단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었다. 경찰도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는데 문득 무서워졌다. 언제 그사람이 진료실에 몰래 와 칼로 나를 찌를지 모르는 것이었다.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경찰은 제대로 피해자를 보호해 주지 않았고 환자를 도우려던 의사는 도리어 환자에게 폭행 당했다. 매번 TV에 응급실 의사들이 폭행 당해도 나아지는건 없었다. 그저 뉴스가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불친절한 의사는 맞아도 돼라는 말도 안되는 댓글들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여론은 아무렇지 않은듯 바뀌었다.


나를 지킬수 있는건 나뿐이었다. 메스와 수술용 가위를 서랍에 보관했다. 언제 생길지 모를 상황에 스스로 대응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 칼과 가위를 다시 꺼내는 일은 없었지만 나는 그뒤로 환자를 볼 때마다 두려움에 떨었다.


ㄱㅇㅈ. 아직도 이름을 기억한다. Schizophrenia 환자에게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다행이었다. 부디 앞으로도 아무일 일으키지 말고 적당히 살다 죽었으면 한다.






3. 그녀의 겉앓이


그녀가 늦게 일어나는것 같아 깨우려고 올라왔다. 이미 해는 중천에 떴다. ㅅㅇ아 일어나란 소리에 그녀는 뒤척이더니 일어나지 못했다. 뭔가 이상해서 얼굴을 보니 아파보였다. 섬으로 들어오느라 무리했던게 화근이었다. 그녀는 차가 없어 순천에서 이곳까지 버스로 힘겹게 들어왔다. 너무 미안했다. 혼자 행복해하던 순간들이 부끄러워졌다. 체력 좋은 ㅅㅇ에게도 꽤 무리한 여정이었다.


일단 보건소에 있는 약을 처방해 그녀에게 먹였다. 뒤늦은 배멀미로 어지럼증까지 호소했다. 부디 큰 병이 아니길 바라며 그녀 옆에서 간호했다. 꽤 더운 오후였지만 그녀는 온몸을 심하게 떨었다. 외부사람에게 섬은 매우 가혹했다. 섬은 그녀에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다행히 열이 내리고 그녀의 컨디션이 회복되었다. 여전히 힘이 없어보이는 그녀. 그녀를 위해 죽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마트로 달려가 싱싱한 야채를 사고 집으로 돌아와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한번도 끓여본적 없는 죽. 어린시절 아픈 나를 위해 새벽같이 죽을 쒀 주시던 어머니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피곤하지 않으셨다. 내가 아플때면 언제든 깨어 계실정도로 건강하셨다. 어머니는 그런줄 알았다. 뜨거운 죽을 호호 불어가며 내 입으로 넣어주시던 어머니. 다먹고나서 나는 어머니 허벅지에 누워 앓는 소리를 냈다. 아파하는 내 모습을 보지 못하시며 뒤로 돌아 눈물을 훔치시던 어머니. 그때가 떠올랐다.


씹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죽을 끓여 그녀에게 가져갔다. 맛은 모르겠지만 정성껏 끓였다. 그녀는 아픈 상황에서도 웃음을 지어보이며 맛있게 먹으려고 했다. 몇수저 먹다 못먹겠다며 누워버렸다. 그녀를 일으켜 엄마처럼 입에 죽을 가져다 주었다.

엄마의 허벅지는 내 이마의 열을 식힐정도로 차가웠다. 엄마 허벅지 사이로 부는 바람에 내 열도 식었고 어머니는 차가운 수건을 바꿔가며 온몸을 닦아주셨다. 그녀의 정성에 나는 아침이 되어 열이 똑 떨어졌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잠드셨다.


그녀의 얼굴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간호해주던 어머니가 누워계셨다. 내게 해주셨던것만큼 어머니에게 간호를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달라진것이 있다면 나는 의사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열을 내릴때 해열제만큼 좋은게 없고 푹 쉬게 놔두는게 상책이라는것을 알고 있었다. 그걸 모르시는 어머니는 본인의 정성을 다해 치료하셨다. 


그녀에게 죽을 먹이고 푹 쉴수 있도록 조용히 방을 비켜주었다. 그녀가 낫기만을 기다렸다. 


약으로 낫지 않는 병을 만날때마다 가끔은 어머니의 명약이 생각났다. 어머니의 허벅지에 누우면 바로 낫진 않아도 결국엔 나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을때까지 나를 간호해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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