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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mun | 20/01/19 03:53 | 추천 23 | 조회 4925

참호전 : 영국 공습 +315 [14]

에펨코리아 원문링크 https://m.fmkorea.com/best/2616826760

?모두들 휴일 잘들 보내고 계신가요? 해외 축구에 스토브 리그에 그것이 알고 싶다까지 볼거리가 많은 휴일이네요. 오늘의 내용은 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이루어진 독일의 영국 공습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본격적인 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1915년 1월 19일, 흔히 제플린으로 가장 잘 알려진 독일 비행정 2정이 노퍽 해안의 ‘Yeppe'란 도시를 공습했다. 'Yeppe'는 제플린에 의해 공습당한 영국 최초의 도시가 되었다. 이후 공습은 노퍽 해안을 넘어 수도 런던 및 영국 곳곳으로 확대되었다.


독일 제플린.jpg 참호전  : 영국 공습
< 독일의 제플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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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 대전 동안 영국은 독일의 공습으로 약 4,800명에 가까운 민간인을 사상자로 잃었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1,400명에 달했다. 단순히 숫자상으로만 바라보면 그 피해가 매우 적어 보일 수도 있다. 서부 전선에서만 장교 11만 8,941명, 사병 257만 1,113명을 전투 사상자로 잃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공습이 영국 국민들에게 준 심리적 충격은 가히 엄청났다.


1917년 8월 13일 폭격으로 부상 당해 병원에 입원한 어린이.jpg 참호전  : 영국 공습
< 1917년 8월 13일 이루어진 공습으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한 어린이의 모습 >


1917년 5월 25일 포크스톤에 이루어진 공습으로 사망한 이들을 위한 무덤을 준비하는 노동자들.jpg 참호전  : 영국 공습
< 1917년 5월 25일 독일은 포크스톤을 공습했고 그 결과 95명의 사망자와 19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공습으로 사망한 이들을 위한 무덤을 준비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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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 이전 본토의 대다수 영국인들은 직접적으로 전쟁을 체험하는 것은 최전방의 군인들만의 이야기고 자신들은 그러한 최전방에 보낼 전쟁 물자를 생산, 공급함으로써 간접적으로만 전쟁을 체험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있어 직접적인 전쟁은 어디까지나 영국 해협 너머의 일이었다.


1917년7월 7일 런던 공습 중 독일 항공기가 찍은 런던의 모습, 사진 왼쪽으로 세이느 폴 대성당이 보인다..jpg 참호전 : 영국 공습
< 1917년 7월 7일, 독일 항공기가 런던 공습 중 찍은 런던의 모습. 사진 왼편에 세인트? 폴 대성당의 모습이 보인다. >?


고타 폭격기에 피해를 입은 런던의 한 건물, 폭탄이 지하에서 폭발하여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다. 거물이 공습 대피소로 이용되어 피해가 컸다.jpg 참호전 : 영국 공습
<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런던의 한 건물. 폭탄이 지하에서 폭발해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


1916년 1월 31일 제플린의 공습으로 파괴된 'Burton-on-Trent'의 주택.jpg 참호전 : 영국 공습
< 1916년 1월 31일 이루어진 공급으로 파괴된 'Burton-on-Trent'의 한 주택 >

1917년 7월 7일 고타 폭격기에 피해를 입은 런던의 한 건물.jpg 참호전 : 영국 공습
< 1917년 7월 7일에 이루어진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런던의 한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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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7월 7일 이루어진 공습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모습(뒤로 세인트 폴 대성당).jpg 참호전 : 영국 공습
< 1917년 7월 7일에 이루어진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모습. 뒤로 세인트 폴 대성당의 모습이 보인다. >


공습으로 파괴된 브릭스턴 베이트리 로드의 한 주택.jpg 참호전 : 영국 공습
< 공습으로 파괴된 브릭스턴 베이트리 로드의 한 주택 >

?그러나 비행선을 이용한 독일의 공습은 더 이상 전방과 후방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안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공간이 공습으로 파괴되는 광경을 보면서 영국 국민들은 실로 엄청난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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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적의 공습은 주로 야밤의 어둠을 이용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이와 같은 기습적인 공습에 대한 아무런 피난계획이나 대처 방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에 영국인들이 받은 충격과 혼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공습을 위해 비행 중인 제플린.jpg 참호전 : 영국 공습
< 공습을 위해 비행 중인 제플린의 모습 >


?그렇다고 해서 영국이 충격과 혼란에 빠져 마냥 독일의 공습에 당했던 것은 아니었다. 독일 공습 초기 영국은 영공보다는 해안선은 방어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탓에 대다수의 항공기 편대를 대륙으로 파견한 상태였다. 때문에 당시 영국을 지키기 위한 항공기가 거의 없었던 상황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일부 편대를 대륙에서 본토로 리콜 하였고 또한 곳곳에 탐조등과 대공포, 관찰자 등을 설치 및 배치하였다. 또한 적의 공습을 방해하기 위해 가로등의 밝기도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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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추되는 Schutte-Lanz SL 11, 독일이 영국을 공습하기 시작한 이래 첫 격추였다..png 참호전 : 영국 공습
< 격추되는 Schutte-Lanz SL 11의 모습. 독일이 공습을 시작한 이래로 첫 격추였다. >

영국 공군에 의해 격추된 제플린의 모습.jpg 참호전 : 영국 공습
< 영국 공군에 의해 격추되어 바다로 추락한 제플린의 모습 >


추락한 제플린의 잔해를 조사하는 영국 군인들의 모습(1916년).jpg 참호전 : 영국 공습
< 격추된 제플린의 잔해를 조사하고 있는 영국군의 모습 >


격추된 제플린.jpg 참호전 : 영국 공습
< 격추된 제플린의 모습 >

?독일도 제플린을 통한 공습에 한계를 느끼고 곧 고타 폭격기를 새롭게 개발, 1917년 6월을 기점으로 고타 폭격기를 통한 새로운 공습을 시도하였다. 1918년 5월까지 대략 60대가 넘는 고타 폭격기가 이 과정에서 격추 되었고 고타 폭격기를 통한 공습도 곧 한계를 맞이하게 되었다. 독일의 영국에 대한 공중 위협은 이렇게 서서히 끝나가기 시작했고 영국인들은 독일의 공습으로부터 드디어 한 숨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비행중인 고타 폭격기.png 참호전 : 영국 공습
< 비행 중인 고타 폭격기의 모습 >

격추된 고타 폭격기.jpg 참호전 : 영국 공습
< 격추된 고타 폭격기의 모습 >


?오늘의 내용은 여기까지 입니다. 글 자체는 금방 썼는데 사진을 찾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네요 ㅜㅜ(중간에 스토브 리그랑 그알 보면서 딴짓한 것도 있지만..) 남은 휴일도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글 재미있게 읽어 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갈리폴리'와 관련된 내용을 가지고 다시 찾아 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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